8개월간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증시의 힘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2분기 호실적이 지수 하락을 막고 있지만, 짙어지는 ‘실적 피크아웃(고점 통과)’ 우려와 중국 규제 리스크가 강하게 주가를 짓누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여름 내내 지지부진한 ‘박스피’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처럼 경기가 둔화하는 시기엔 성장주나 고배당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역대 최장 랠리 끝낸 코스피…"8월도 박스피"

코스피 ‘8개월 랠리’ 깨졌다

30일 코스피지수는 8개월간 이어져온 최장 상승 랠리(월말 종가 기준)를 멈췄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은 1.24% 하락한 3202.32에 마감하면서 지난 6월 30일 코스피지수(3296.68)를 넘지 못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상승했다. 이 같은 기록은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이던 1977년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이날 증시가 하락한 것은 미국 나스닥100 선물이 하락한 영향이 컸다. 애플 페이스북 등 빅테크 기업이 하반기 실적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지 못한 와중에 아마존이 예상을 밑도는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아마존 주가가 시간외 거래에서 7.47% 급락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미디어콘텐츠 본부장은 “주요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이어지고 있지만 실적 피크아웃 우려를 잠재울 정도의 모멘텀은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플랫폼 규제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홍콩 항셍지수가 1.88% 하락 마감한 것도 국내 증시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국내 증시는 박스피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루한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2.55%를 기록했다. 견조한 수출과 기업들이 내놓는 2분기 호실적이 지수 하락을 저지하고 있지만,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와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 우려가 지수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 중국 정부의 규제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시아 국가 투자 비중을 크게 줄이고 있는 것도 악재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부터 올 1월까지 지수가 급등한 과정에서 내년 실적까지 선반영된 측면이 있다”며 “2분기 호실적을 넘어선 다른 모멘텀이 있어야 다시 상승세를 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스피 3300 시대’의 주역이던 개인들의 매수 강도도 예전만 못 하다. 지난 1월 약 25조8000억원어치를 사들인 개인은 이달 들어 약 9조원어치를 순매수하는 데 그쳤다. 순매수액이 3분의 1 토막 난 셈이다.

“8월에도 지루한 장세 계속될 것”

증권가에서는 8월에도 박스피 장세가 계속될 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익 증가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는 짙어지는 반면 상승 모멘텀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8월 코스피지수가 3140~3340선을 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경기 회복 기대는 낮아지고 있고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도 크다”고 진단했다.

삼성증권도 8월 코스피지수 예상 범위로 3100~3350을 제시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피크아웃 우려에 미국 중앙은행(Fed)의 테이퍼링 공식화를 앞둔 경계감, 중국의 플랫폼 규제가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박스권 장세에선 성장주에 다시 주의를 돌려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가치주와 성장주가 번갈아 오르던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기가 둔화할 때 성장성은 더욱 희소해진다”며 “당분간 성장주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거시 경제보다는 개별 기업의 실적에 집중하라는 조언도 나왔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3분기 이익 추정치가 늘어나는 업종은 운송, 철강, 반도체 등이다.

안정적인 고배당주에 안착하라는 목소리도 있다. 서상영 본부장은 “최근처럼 시장 예측이 어렵고 우려스러울 땐 배당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미국 우선주를 모아놓은 상장지수펀드(ETF)인 글로벌X 프리퍼드 ETF(티커명 PFFD)를 추천했다. 이 ETF의 연간 배당률은 4.63%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