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으로 꼽혀온 칭화유니그룹이 20조원이 넘는 거대한 부채 때문에 결국 파산 구조조정 절차를 밟게 됐다. 설계 전문업체(팹리스)에서 출발한 칭화유니그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낸 중국 업체여서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19일 경제전문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시 중급인민법원은 채권자인 후이상은행이 낸 칭화유니그룹 파산 구조조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쯔광궈후이(紫光國徽) 등 칭화유니그룹의 상장 계열사들은 지난 16일 밤 이런 내용이 담긴 공고문을 동시에 발표했다.

법원은 파산 구조조정 절차를 맡을 관리인으로 칭화유니그룹의 현 경영진을 임명했다. 중국의 기업파산법은 관리인이 법원의 파산 구조조정 인용 결정으로부터 6개월 안에 구조조정안을 마련해 법원과 채권단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한은 최대 3개월 연장될 수 있다. 기한 내에 관리인이 구조조정안을 내놓지 못하면 법원은 채무자의 파산을 선고하게 된다.

중국의 파산 절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추가 투자자 유치와 채무 조정을 통해 기업을 살리는 파산 구조조정과, 채무 기업을 해산시키고 남은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나눠주는 파산 청산 절차다. 칭화유니그룹에 적용되는 파산 구조조정은 빚의 일부를 탕감하거나 출자 전환해 존속 가치가 있는 기업이 살아날 발판을 마련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한국의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에 가깝다.

업계에서는 칭화유니그룹이 이번 파산 구조조정 절차 진행 과정에서 전략적 투자자를 찾아 재무 위기를 넘기는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핵심 계열사들을 매각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은 후순위다.

차이신은 칭화유니그룹이 파산 구조조정 결정 전부터 이미 잠재적 투자자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었으며, 저장성 국유자산관리위원회(국자위), 항저우시 국자위, 알리바바그룹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특히 칭화유니그룹이 46.45%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 쯔광구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쯔광구펀은 중국 최대 정보기술(IT)서비스 기업이다. 서버, 클라우드 등 사업 분야에서 화웨이와 경쟁 중인 신화싼그룹을 거느리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은 시진핑 국가 주석이 나온 명문 칭화대 산하 기업이다. 칭화대의 기술지주회사인 칭화홀딩스가 지분 51%를 갖고 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자오웨이궈 회장 측은 지분 49%를 갖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중앙정부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가 직접 관리하는 중앙기업이기도 하다.

칭화유니그룹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창장메모리, 반도체 설계업체 쯔광궈신, 휴대폰 반도체 전문 설계업체 쯔광잔레이 등을 갖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안팎에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는 데는 실패하면서 막대한 빚을 안게 됐다. 차이신은 "칭화유니그룹이 지난 10년 간 대량 해외 인수합병에 나선 가운데 산하의 여러 반도체 사업에서 돈을 불태웠지만 스스로 이익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부족했다"며 "2019년 이후 채권을 발행하지 못했고 계속 쌓인 채무로 결국 위기가 폭발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작년 6월 기준 칭화유니그룹의 채무는 1567억 위안(약 27조원)에 달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의 만기가 1년 미만이었다. 반면 사업으로 돈을 벌어 빚을 갚을 능력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올 1분기 칭화유니그룹의 순이익은 2억7500만위안(약 485억원)에 그쳤다.

반도체 업계의 관심은 칭화유니그룹의 메모리반도체 사업 향배에 있다. 칭화유니그룹이 우한시와 합작해 2016년 설립한 창장메모리는 256기가바이트급 낸드 플래시 등 일부 제품을 양산 중이지만 아직 투자 규모 대비 실적은 미진한 상황이다. 칭화유니그룹은 또 충칭시와 함께 2019년 D램 업체인 충칭쯔광메모리를 설립하고 2021년 양산 계획을 내놨으나 최근까지 구체적인 진전 소식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