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00원 주식을 650원에?…상폐위기 기업 '헐값' 유상증자 논란
신주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유상증자는 최근 시세(주가)의 10% 이상 낮출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발행가액이 시세보다 크게 낮으면 기존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래정지 기업은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증자에서도 ‘하한선’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은 시세의 10분의 1 수준에 경영권을 넘겨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기업은 신라젠이다.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로 거래정지된 신라젠은 최근 1000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총 3125만 주의 신주를 발행해 엠투엔(우호지분 포함)을 새로운 최대주주로 맞이할 예정이다. 매매 재개를 위한 거래소 요구사항인 ‘최대주주 변경’을 충족하게 되는 것이다. 소액주주로서도 거래 재개에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부 소액주주가 발행가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주당 발행가액이 3200원으로 현 주가(1만2100원) 대비 4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8666억원인 기업이 2280억원 가치로 책정돼 팔렸다고 볼 수 있다.

신라젠은 발행가액 산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았다. 사업화 성공 확률 등을 고려한 미래현금흐름할인법(DCF model)을 적용해 주당 기업가치를 2057~3200원으로 추정했다고만 적시했을 뿐이다. 가치를 평가한 기관은 익명의 회계법인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주주는 최소한 가격 산정 근거는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주주 동의 없이 회사가 헐값에 매각될 빌미를 줄 수 있는 점도 지적했다. 이사회 결의사항인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소액주주들의 동의가 필요없어서다.

또 다른 거래정지 기업인 이에스에이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에스에이는 최근 주당 657원(총 10억원 규모)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 소액주주들이 금융감독원에 고발을 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유는 신주 발행가액이 현 주가(8850원)의 7.4%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에스에이도 감정평가를 회계법인 두 곳에 맡겼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공시하지 않았다. 이 같은 유상증자가 앞서 시행한 무상감자와 합쳐지면서 기업이 헐값에 넘어갔다고 소액주주들은 주장한다. 이에스에이는 보통주 30주를 1주로 병합하는 무상감자를 단행했다. 이를 통해 발행주식수가 4580만1509주에서 152만6716주로 3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소액주주들은 “유통주식수를 줄인 뒤 헐값에 주식을 발행함으로써 시총 270억원 기업의 경영권을 10억원에 넘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인수자로 나선 개인투자자 박원하 씨는 10억원으로 지분 49.92%를 확보했다.

최근에는 코스닥시장 상장사 아리온의 주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아리온은 지난달 보통주 30주를 1주로 병합하는 무상감자를 결정했다. 아리온은 인수자로 나선 아이젤크리에이티브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회사를 인수합병(M&A)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주주들은 헐값에 주식이 발행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주주들은 최대주주가 바뀌는 증자에서 최소한 발행가액 산정 근거는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회사가 산정 근거를 공시해야 할 의무는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시장 자율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