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모가 너무 높다"…크래프톤 상장 차질
마켓인사이트 6월 26일 오후 4시41분

올여름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는 크래프톤의 상장에 제동이 걸렸다. 금융감독원이 공모가가 높아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크래프톤에 전달하면서다. SD바이오센서도 이달 초 금감원의 지적을 받고 공모가를 약 40% 낮췄다. 금융당국이 증시 호황기를 틈타 몸값을 부풀리는 기업을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예비상장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크래프톤에 증권신고서를 정정할 것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증권신고서에 거짓인 내용이 있거나 중요한 내용이 기재되지 않은 경우,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내용이 있다고 판단하면 정정 신고서를 요구할 수 있다.

크래프톤의 상장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16일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월트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 등 글로벌 콘텐츠기업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인 45.2배를 적용해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를 35조735억원으로 책정했다. 증권가는 크래프톤이 책정한 기업가치가 과도하다고 보고 있다. 크래프톤의 매출 대부분이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 하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 대상 기업 선정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크래프톤은 배우 마동석 씨를 주연으로 한 단편영화를 선보이는 등 콘텐츠기업으로 변모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초기 단계에서 이를 기업가치 산정에 반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크래프톤 공모가 내릴까…중복청약은 가능
카뱅 등 兆단위 IPO에도 영향

크래프톤이 장외가와 비슷한 수준에서 공모가를 책정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크래프톤의 희망공모가는 45만8000~55만7000원으로 증권신고서 제출 당시 장외가(55만원)보다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상장한 기업 중 공모가가 장외가보다 높았던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며 “주당 가격도 최근 10년간 상장한 기업 중 가장 비싸 시장의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크래프톤의 공모액이 최대 5조6000억원으로 국내 기업공개(IPO) 역사상 최대 규모인 만큼 흥행에 실패할 경우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크래프톤의 공모 규모는 SK바이오팜(9593억원), 카카오게임즈(3840억원), 하이브(9625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1조4918억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2조2460억원) 등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고평가 논란 속에 상장한 하이브(빅히트엔터테인먼트)처럼 상장 후 주가 흐름이 부진해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업계는 크래프톤이 자진해서 공모가를 낮출지 주목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오는 28일부터 수요예측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공모 일정이 연기됐다. 기존 신고서의 효력이 정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청약 시 중복청약은 가능하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이번 금융감독원의 정정 요구가 향후 IPO를 앞두고 있는 기업들의 공모가 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HK이노엔, LG에너지솔루션 등 조(兆)단위 ‘대어’들이 공모를 앞두고 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