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주주 협박에 보고서 쓰기 겁나"…여의도에서 짐싸는 바이오 애널들
바이오 애널리스트는 증권업계 애널리스트 중에서도 몸값이 높기로 유명하다. 복잡한 바이오산업을 분석하려면 석·박사학위 또는 관련 업계 경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의도를 대표하던 바이오 애널리스트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나고 있다.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에서 바이오산업을 담당해온 진홍국 애널리스트가 이날부로 퇴사했다. 진 애널리스트는 제약·바이오 분야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여러 번 수상했을 정도로 인정받아왔다. 그는 다음달 12일부터 알토스바이오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알토스바이오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업체 알테오젠의 자회사다.

하나금융투자의 선민정 애널리스트도 최근 삼성경제연구소(SERI)로 이직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출신인 선 애널리스트는 작년 진단키트 업체 씨젠을 처음 발굴해 이름을 알렸다. 한화투자증권의 신재훈 애널리스트도 연초 랩지노믹스의 재무담당 이사(CFO)로 옮겼다. 작년 말에는 NH투자증권의 구완성 애널리스트가 유전체 분석기업 지니너스 CFO로 이직했다.

리서치업계에서는 이들이 단순히 더 좋은 곳을 찾아 여의도를 떠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업에 대한 회의감, 격무, 업무의 변화 등 여러가지 요인이 영향을 줬다는 전언이다. 이 가운데 업 자체에 대한 실망감이 큰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강성 주주들로부터 협박과 항의를 받아야 하는 점이 대표적이다. 바이오 애널리스트들은 소신있는 보고서를 쓰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비판적인 내용이 담기는 순간 협박에 가까운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다. 개인의 신상을 털고, 회사로 찾아오는 일도 많다. 한 애널리스트는 “회사 방침에 따라 유튜브에 출연하는 횟수가 많아졌는데 지명도가 올라가면서 협박에 더욱 취약해졌다”고 했다.

양질의 보고서를 써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바이오주는 기업의 펀더멘탈보다 단순한 기대심리나 소문에 따라 급등하는 사례가 많아서다. 좋은 기업을 발굴해도 결국 수익을 주는 건 ‘잡주’라는 자조섞인 말이 나온다. 강성 주주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문제의 기업’들을 보고서에 다룰 수도 없다.

격무도 더해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바이오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기관 세미나뿐 아니라 고객 응대, 회사 내부 업무 등 할 일이 몇 배 많아졌다. 한 애널리스트는 “작년에는 바이오 애널리스트가 과로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보상은 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업무 외적인 일도 많아졌다.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구독자를 늘리는 유튜브가 한 예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모 증권사가 애널리스트의 핵심성과지표(KPI)를 유튜브 조회수로 바꿨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회사로서는 바이오 애널리스트가 퇴사하면 리서치에 큰 공백이 생긴다”며 “석·박사학위, 제약사 근무 경력 등이 필요한 분야 특성상 바로 인력을 충원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