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생활고, 빚투(대출로 투자) 영향으로 올해 1분기 가계 빚이 사상 최대인 1765조원까지 늘어났다. 작년 1분기와 비교해 1년 동안 153조원이나 불어난 규모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김병언 기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생활고, 빚투(대출로 투자) 영향으로 올해 1분기 가계 빚이 사상 최대인 1765조원까지 늘어났다. 작년 1분기와 비교해 1년 동안 153조원이나 불어난 규모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김병언 기자
가계 빚(가계신용)이 사상 최대인 1765조원을 돌파했다. 한국의 인구수(중위 추계·5182만2000명)를 고려하면 국민 한 사람당 3400만원의 빚을 짊어진 셈이다. 부동산·주식·암호화폐를 빚을 내서 사들이려는 수요가 작용한 결과다. 예상치를 뛰어넘는 속도로 불어나는 가계 빚이 가계 씀씀이를 옥죄고, 금융 불안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 비율 90% 돌파

자산거품 경고음 커지는데…'영끌 가계빚' GDP 맞먹는 1765조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가계신용 잔액은 올해 1분기 말 1765조원으로 1년 전보다 9.5%(153조6000억원) 늘었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작년 4분기(7.9%)에 비해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가계신용 증가율을 8%에서 내년까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수준(4%대)으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가계신용 증가율은 어느덧 9%대로 치솟았다.

가계 빚이 명목 국내총생산(GDP·작년 말 기준 1924조원) 수준에 육박할 만큼 불어나면서 가계의 차입금 상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명목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91.7%로 작년 말보다 2%포인트가량 상승한 것으로 추산된다. 가계신용 비율은 2018년 81.0%, 2019년 83.4%, 2020년 89.8%로 매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주택과 주식, 암호화폐를 매입하려는 수요로 가계 빚이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택의 경우 가격이 빠르게 뛰면서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차입금 조달 규모도 커졌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국 주택(아파트·단독·연립 종합) 매매 가격은 8.35% 상승했다. 연간 상승률 기준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11.60%) 후 14년 만에 가장 높았다. 증시에도 신용대출 등으로 조달한 자금이 몰렸다. 올해와 작년 공모주 ‘대어’로 꼽히는 카카오게임즈(57조5543억원) 빅히트(현 하이브·58조4000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63조6000억원) 일반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기 위해 뭉칫돈을 조달하려는 수요가 컸다.

2030 가계 빚 ‘경고등’

2030세대가 최근 가계 빚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은에 따르면 2030의 지난해 말 가계대출은 440조원으로 2019년 말보다 17.3%(65조2000억원) 늘었다. 이들은 빚으로 부동산과 암호화폐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매수자 가운데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43.9%였다. 올해 1분기 국내 4대 암호화폐거래소(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새 가입자(249만5289명) 중 63%가량이 2030세대로 집계됐다.

하지만 최근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가 오르면서 가계의 신용 위험도 커지고 있다. 앞으로 1년 동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나타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이달 2.2%로 지난 4월보다 0.1%포인트 상승했다. 2019년 5월(2.2%) 후 가장 높다.

한은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우고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시점이 연내로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시장금리도 이 같은 분석을 반영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대출금리의 선행지표로 통하는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24일 연 1.116%로 올해 1월 4일(연 0.954%)보다 0.162%포인트 상승했다.

자산가격도 출렁이고 있다.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달 14일 개당 8148만7000원까지 뛰었지만 25일 현재 4700만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시장금리 등이 뛰면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 부담이 커져 가계 씀씀이가 쪼그라들고 기지개를 펴던 경기회복세도 주춤해질 수밖에 없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금리가 뛰는 데다 암호화폐 변동폭이 커지면서 대출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