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하나도 없던 하루.’ 12일 여의도 증권가에선 성장주와 경기민감주가 일제히 부진했던 국내 증시를 두고 이런 말이 나왔다. 반도체산업이 주도하고 있는 대만 증시가 급락하면서 성장주가 타격을 받은 데다 전날 미국 다우지수가 2개월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져 경기민감주 투자 심리까지 위축시켰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변동성이 높은 지지부진한 장세가 올여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만 자취안지수 4% 넘게 추락

'대만 쇼크' 덮친 코스피…성장주·가치주 동반 추락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앞두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움츠러들었다. 앞서 중국의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이 3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

월가에서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도 23.73까지 오르며 3월 10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만큼 증시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증시에 변수로 꼽히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장중 연 1.62%를 넘어서기도 했다.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 기대감은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는 원인 중 하나다. 국내 증시가 개장하기 전부터 이날 증시가 부진할 것이란 우려가 흘러나왔다.

장이 시작된 뒤에는 ‘대만 증시 쇼크’가 국내 증시 낙폭을 키웠다. 대만 자취안지수는 이날 4% 넘게 추락했다. 대만 대표기업인 TSMC가 지난달 부진한 매출을 기록했다는 발표가 증시를 끌어내렸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가뜩이나 불안하던 기술주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계기가 됐다”며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이 늘어나자 이에 따른 이동 제한 완화가 비대면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증폭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선 지난달 세계 PC 출하량이 전년 동기 대비 11%나 줄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도체 쇼티지(공급 부족) 현상과 함께 백신 접종국이 늘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달라진 것이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설명이다.

외국인 이탈 가속화

그나마 개미 군단(개인 투자자)의 유동성 힘이 국내 증시를 떠받쳤다. 개인은 이날 3조원가량을 나홀로 매수했다. 개인은 코스피지수가 주춤한 이틀간 6조5000억원어치 주식을 쓸어담았다. 지난 10일 코스피지수가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개인들에게 ‘결국 우상향할 것’이란 학습효과가 생겼다.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약 5조30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 매도세에 장중 8만원 선이 무너졌던 삼성전자는 8만원을 겨우 지켜내며 장을 마쳤다. 성장주로 불리는 LG화학(-5.27%)을 비롯해 한국조선해양(-4.36%) 금호석유(-5.11%) 등 경기민감주가 줄줄이 하락했다. 반면 현대차 기아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KT CJ제일제당 등 실적개선주는 지수 하락에도 상승 마감하며 강한 내성을 보여줬다.

“여름까지 단기 조정”…매수 기회?

일부 전문가들은 불안한 조정장을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초여름까지 조정을 거칠 수 있다”며 “조정기를 매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당장 단기적인 전망은 밝지 않다. 다수 전문가가 다음달까지 상승세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가 상승으로 시장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증시가 상승 추세로 돌아서기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지수 밴드의 올해 상단은 3500으로 보고 있지만 지금은 상승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주가가 다시 움직이려면 긴축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고, 기업 실적이 더 늘어난다는 신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재원/박의명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