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 어려운 한국
과도한 징벌적 상속세 등
디스카운트 요소 제거해야

변화 의지 있는 기업 찾아
저평가 요인 해소 도울 것

주가 2800~3500선 5년 지속
배당주·중소형 지주사 유망
1세대 가치투자가 이채원 "착한 행동주의펀드로 가치투자 재정립할 것"

“한국은 가치투자 자체가 어려운 나라입니다.” 의외였다. 국내에 가치투자를 정착시킨 ‘1세대 가치투자가’의 입에서 ‘가치투자가 힘든 나라’라는 본질적인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현업에서 떠나 야인이 된 가치투자의 대가 이채원 전 한국투자밸류운용 대표(사진)는 지난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고민을 털어놨다. 고민의 결과는 ‘기업가치 개선펀드’로 새 출발에 나서겠다는 것. ‘성장주냐 가치주냐’라는 논쟁을 떠나 보다 본질적인 가치투자의 토양을 닦겠다는 설명이다.
‘가치주 귀환’ 예상 적중했지만…
이 전 대표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과 함께 국내 가치투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성장주가 질주하는 사이 가치주가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하면서 작년 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성과 부진에 책임을 지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결정이었다. 지난해 말 떠나면서 그는 “가치주 시대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내년 1분기에 기회가 찾아올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미국 국채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성장주가 주춤한 사이 가치주의 시간이 찾아왔다. 실제 연초 이후 수익률을 보면 가치주 펀드가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가치주에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내 투자 환경에는 날 선 비판을 제기했다. 성과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투자 실패의 원인이 가치주 장기투자가 어려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화에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 전 대표는 “현재 상법상 이사회가 주주들을 위해 일을 하도록 규정돼 있지 않은 데다 개인투자자 숫자는 급격히 늘었지만 보호장치가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기업 합병 때마다 투자자들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큰 손해를 보는 투자자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징벌적인 상속세 탓에 대주주의 주가 부양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다양한 노력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 점점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인생의 2막을 행동주의 펀드로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저평가돼 있는 기업들 가운데 스스로 변할 의지가 있는 곳을 찾아 컨설팅과 주가를 누르고 있는 요소를 제거하는 기업가치 개선 펀드를 준비하고 있다”며 “2~3개월 안에 팀을 확정짓고 본격적으로 행동주의 펀드로서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많은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위협하는 기존 행동주의 펀드와 달리 5% 미만 소수 지분을 확보해 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가치를 개선해 나가는 게 목표다.
“여전히 주식 매력도 높아”
국내 주식시장 성장성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이 전 대표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가치가 2000조원인 상황에서 올해 예상되는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130조~140조원이라고 가정하면 일드(수익률)는 7% 정도”라며 “금리가 연 1.2% 수준이어서 여전히 주식의 매력도가 높은 상태”라고 평가했다. 금리 상승 여부가 향후 시장의 변수가 될 것이란 예측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공매도 재개 이후 까다로운 종목 차별화 장세가 본격화했다고도 했다. 이미 시장에서 공매도 재개에 대비해온 만큼 ‘공매도 충격’은 시장에 미미한 영향을 준 채 마무리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그는 “벌어들이는 이익 대비 고평가된 종목들의 경우 공매도로 가격 거품이 빠지겠지만 실적이 뒷받침된 종목은 여전히 상승 여력이 있다”며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코스피지수 2800~3500선을 오가는 새로운 박스권 장세가 5년가량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망 투자처로는 우량 고배당주와 저평가된 지주사를 꼽았다. 그는 “개미들이 스마트해진 만큼 덜 오른 주식을 계속 찾아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싼 중소형 지주사에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박재원/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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