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애플이 최근 6년간 100여 개 기업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3~4주에 1개꼴로 기업을 사들인 것이다. 그런데 애플이 인수한 기업 대부분은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대기업은 2014년 헤드폰 제조업체 비츠뮤직(30억달러)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애플의 인수·합병(M&A) 전략이 '빅샷'(거물)을 타깃으로 삼는 구글, 페이스북, 인텔,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과 다르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CNBC는 애플이 소규모 스타트업 인수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인재 확보를 위한 인수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1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이런 M&A 전략은 인수(acquisition)와 고용(hire)의 합성어인 '애크하이어(acqhire)'로 불린다. 애플의 M&A 전략이 소규모 스타트업에 있는 유능한 개발자들을 흡수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애플은 자체적으로 기술력이 취약하다고 판단하는 분야에서 '먹잇감'을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쿡 CEO는 2019년 CNBC와의 인터뷰에서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야를 파악한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을 인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2년 애플에 넘어간 보안 기술 업체 어센틱테크가 대표적이다. 이후 애플은 아이폰의 지문 인식 기술을 개발해 냈다. 애플의 음성비서 '시리'와 뉴스 구독 서비스인 '애플 뉴스+'도 M&A를 거쳐 나온 서비스들이다.

애플은 인수 대상 기업의 기존 사업을 유지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고 CNBC는 지적했다. 해당 기업의 신제품 개발을 중단시키거나 고객이 줄어들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애플의 관심은 인수 대상 기업의 '개별 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s)들이다. 팀장의 지시나 팀원들과의 협업 없이 혼자서도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유능한 기술 인력들을 가리킨다. 이런 인력을 애플의 기존 조직으로 빠르게 흡수시키는 게 주된 목표다. 영업 사원이나 경영 지원 부서에 있는 직원들은 관심 밖이다.

애플은 M&A 계약을 맺을 때 일부 개발자들이 수년간 애플을 떠나지 못한다는 조항을 넣기도 한다. 대신 막대한 규모의 급여나 주식을 지급한다. 이른바 '황금수갑'을 채우는 것이다. 애플은 개발자 1인당 300만 달러 안팎으로 계산해 기업 가치를 매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M&A는 철저히 비밀리에 이뤄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통상적인 M&A와 달리 은행을 끼지 않고, 자체 M&A 전담팀이 모든 과정을 주도한다. CNBC가 2015년 1월 이후 언론에 공개된 애플의 기업 인수 건수를 조사한 결과 55건에 불과했다. 쿡 CEO가 밝힌 것(100여 건)보다 훨씬 적은 숫자다.

인수 대상에 오른 기업에는 '함구령'이 내려진다. M&A 절차가 완전히 마무리된 뒤에도 인수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 구인·구직 플랫폼인 링크드인에서 프로필의 '직장 정보'를 수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박상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