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막강한 글로벌 금융 파워를 대외 정책 수단이자 ‘적국’을 겨냥한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다. 바이든 정부는 최근 러시아 외교관 10명을 추방하고 6개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동시에 자국 금융회사들의 러시아 채권 매입을 금지했다. 러시아 중앙은행과 재무부는 물론 국부펀드가 발행하는 신규 물량도 매입할 수 없도록 했다. 작년 미국 대선 때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공작에 나섰고, 미국 연방기관들을 연달아 해킹했다는 이유다.

미국 금융회사들의 러시아 채권 매입 금지는 당초 예상보다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조치라는 평가다. 한 금융규제 관련 변호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의 러시아 제재는) 미국 은행권을 무기화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은행들을 외교 수단이자 전초기지로 삼는 조치”라고 해석했다.

일각에선 금융 시스템을 무기화하고 있는 바이든 정부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등 제재 대상국이 미국 달러의 절대적 지위 및 신뢰성을 본격적으로 흔들 가능성이 있어서다. 예컨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화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전 법정 화폐로 공식 사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인 트랜스애틀랜틱 보안프로그램(TSP)의 안드레아 캔들 테일러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경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협력 체제를 갖추고 있다”며 “바이든 정부가 경제 제재에 나설 땐 매우 세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