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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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은 매수보다 매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증권가의 오랜 격언이다. 지난해 '불장'을 지나 올 초 코스피 박스권을 경험하면서 '쥐고 있던 종목을 언제 처분해야 하나' 고민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코스피가 장중 3200을 찍고 내려온 15일 5대 대형 증권사가 내놓은 종목 리포트 18건 중 '매도(sell)'을 외친 건 단 한 건도 없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5대 대형 증권사(자기자본금 기준) 중 3곳은 1년간 매도 의견을 담은 종목 리포트를 단 한 건도 내지 않았다.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이다. 나머지 두 곳도 매도 의견을 낸 비율이 0.5~1.3%에 그쳤다.

이 기간 '매수' 의견 비율은 각 증권사별로 74.8~91.6%였다. '중립(보유)' 의견 비율은 7.1~20.1%였다.

각 증권사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종목 리포트는 대부분이 무료로 볼 수 있어 개인 투자자들에게 투자 지침서로 통한다.

매도 리포트가 사실상 전무한 이유에 대해 한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리포트를 쓰기로 한 것부터가 1차적으로 선별을 거친 종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업종별 애널리스트가 담당하는 수많은 종목 중 리포트를 쓸 정도면 통상 유망한 종목으로 꼽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외국계 증권사들은 매도 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꾸준히 내고 있다. 리포트를 통해 매수 의견을 냈다가 시장이나 기업 상황이 변하면 투자자들에게 '탈출'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고 봐서다. 지난달 말 기준 1년간 메릴린치인터내셔날엘엘씨증권 서울지점은 전체 리포트 중 21.4%에 매도 의견을 적었다. 모간스탠리인터내셔날증권 서울지점은 매도 의견 비율이 15.2%,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은 13.5%, 노무라금융투자는 11.4%로 집계됐다.

국내 증권사들이 매도를 외치지 않는 건 암묵적인 관행이 됐다. 매도 리포트를 낸 뒤 기업들이 애널리스트의 탐방을 거부하거나 연락을 피하는 등 리서치 활동에 불이익 받았던 사례들도 영향을 미쳤다. 법인 자금 운용이나 인수합병(M&A), 상장 업무 등을 따내야 하는 만큼 리서치센터 입장에서는 기업이나 타 부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도 매도 의견을 망설이게 되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증권가에서는 '중립' '보유' 'hold'를 매도 신호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 중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매도 의견을 꺼리는 게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은 건 부끄러운 일"며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홍길동처럼 '매도를 매도라 부르지 못한다'는 자조적 농담도 한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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