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에 26일(현지시간) 190억달러(약 21조5000억원) 규모의 블록딜(대량매매)이 나오면서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여전히 누가, 왜 블록딜을 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외신과 월스트리트에서는 마진콜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 일각에서는 “추가 매매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6일 장중 다급하게 대량매물 쏟아낸 이유는

28일 외신에 따르면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를 통해 26일 뉴욕증시에서는 대규모 블록딜이 진행됐다. 블록딜은 대량의 주식을 최근 주가보다 할인해 기관투자가 등 대형 투자자들에게 넘기는 거래다. 보통 장이 시작되기 전 마무리되며 장중 블록딜이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26일 뉴욕증시가 열리기 전 골드만삭스를 통해 중국 기업인 바이두, 텐센트뮤직, VIP숍 주식의 블록딜이 마무리됐다.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까지만 해도 미국 증시에 동시 상장한 중국기업들의 주가 하락 가능성을 염두에 둔 투자자가 블록딜에 나선 것으로 이해 가능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중국 기업들을 뉴욕증시에서 퇴출시킬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장중에도 대량 매물이 나왔고 미국기업까지 대상에 포함되면서 시장이 충격을 받았다. 중국 온라인 비디오 플랫폼 아이치이와 중국 교육회사 GSX뿐 아니라 비아콤CBS와 디스커버리 등 미국 미디어기업, 영국 패션플랫폼 파페치 주식까지 매물로 나왔다. 대규모 매매가 장중 진행된 것은 월스트리트 역사상 극히 드문 일로 알려졌다. 스위스 자산운용사인 벨뷔의 미첼 쿠시 매니저는 “금융권에서 25년간 경력을 쌓는 동안 처음 목격한 일”이라고 말했다.

매물로 나온 기업들 주가는 급락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비아콤CBS와 디스커버리 주가는 하루 만에 27% 이상 하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대량매매된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350억달러 증발했다고 전했다.

원인은 한 패밀리오피스의 마진콜? 월가 "추가 충격 가능성도 배제 못해"

CNBC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블록딜의 배후에는 패밀리오피스인 아케고스 캐피탈이 있다고 보도했다. 아케고스 캐피탈은 아시아와 미국 주식에 주로 투자하며 헤지펀드 전략을 구사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유명 한국계 펀드매니저 출신인 빌 황이 설립했다. 아케고스 캐피탈은 현재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아케고스 캐피탈이 마진콜을 당해 보유 지분이 반대매매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마진콜은 손실 등으로 증거금이 부족해질 경우 이를 보충하라는 요구를 뜻한다. 장중 갑자기 대량매매가 나온 점, 거래가 시작된 이후에도 이례적으로 거래방식과 규모를 변경한 점 등을 볼때 이번 매도자가 마진콜 등 매우 다급한 상황에 처했음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서는 아케고스 캐피탈이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를 해왔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비아콤CBS 주가 변동이 아케고스 캐피탈을 압박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고 보도했다. 비아콤CBS 주가는 지난 22일 100.34달러로 마감하며 사상최고가를 기록했다가 26일까지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비아콤CBS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월가의 분석이 나온 데다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여파다. 비아콤CBS의 주가는 26일 사상최고가의 절반도 안되는 48.23달러까지 밀렸다.

미국 자산관리회사 웰스파이어 어드바이저의 올리버 푸셰 부사장은 26일 거래로 매도자의 자금 수요가 모두 충당됐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제 문제는 29일, 30일에도 추가 매매가 일어날지 여부”라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