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운용업계만 30년…'스타 펀드매니저' 출신

"보상 부족하면 회사 떠나도 좋다"
영화 '월스트리트' 보며 꿈 키워
"해외투자 등 도전분야 넓히겠다"
일러스트= 김선우 기자 naeeju@hankyung.com

일러스트= 김선우 기자 naeeju@hankyung.com

김태우 KTB자산운용 대표는 국내 20위권(운용자산 기준)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중 드물게 운용업계에만 30년 가까이 몸담은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이다. 펀드와 운용사 업무 전반에서 전문성이 가장 돋보이는 운용사 CEO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언제 만나도 시장에 대한 예리한 통찰은 물론 회사 상품 하나하나에 대해 최근 자산 유입액, 수익률, 추천하는 이유 등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업계에 몇 안 되는 CEO다.

그는 KTB운용 대표가 된 뒤 5년째 매주 빼놓지 않고 직원들과 ‘신상품 전략회의’를 열어 시장과 업계 동향을 아주 꼼꼼하고 세세하게 파악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김 대표의 두꺼운 회의 파일에는 각종 펀드평가사로부터 수집한 펀드 유출입액과 자금 흐름, 수익률, 최근 신규 설정된 펀드 리스트, 경쟁사 동향 등 데이터가 가득했다. 또 회의에서 나온 각종 코멘트, 이를테면 마케팅팀이 보완할 점, 단기 과제, 중장기 과제, KTB운용만의 경쟁력 등도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게 제 ‘영업 밑천’입니다.”
“시장 읽는 통찰력·수익률 제시 등 탁월”
2016년 김 대표는 KTB운용 대표 취임 후 전 직원 앞에 처음 선 자리에서 전 직장(피델리티자산운용)에서 받은 5년치 급여의 연말정산서를 전부 공개해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여러분도 열심히 하면 이렇게 보상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충격요법이었다. 그는 “평가와 성과 보상을 충분히 할 것”이라며 “직원 각각이 프로페셔널리즘을 이룰 수 있게 해주겠다”고 선언했다. 또 “만약 못마땅하거나 충족되지 않으면 회사를 떠나도 좋다”고 말했다.

이 무렵 KTB운용은 2011년 부산저축은행 파산 사건의 그림자에서 못 벗어나고 있었다. 2006년 이후 KTB운용은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개발 및 저축은행 인수, 유상증자 등에 사모펀드를 통해 자금을 지원했다가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사태를 맞자 투자사들로부터 대형 손해배상을 떠안게 됐다. 펀드 설정액이 10조원에서 6조원대까지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직원들은 3년 가까이 급여 인상이나 보너스가 없자 패배주의가 만연한 분위기 속에 이직 궁리만 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모든 지원과 보상을 하겠다”고 강조하며 그들의 야성을 깨웠다. 회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보다 각자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그의 리더십은 사회 초년병 시절 본 고(故) 윤병철 하나은행 초대 회장에게서 비롯됐다. 하나은행은 대학을 졸업한 1993년 김 대표가 처음 발을 들인 직장이었다. 당시 윤 회장은 신입사원들을 앞에 두고 “하나은행을 위해 일하지 말고 스스로 최고의 은행원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라”며 “만약 하나은행이 못 품을 정도의 인재가 되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하나은행은 인재를 잃은 아쉬움이 있겠지만 그런 큰 인물을 키워냄으로써 한국 금융산업에 기여하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20대 중반에 들은 이 말은 이후 김 대표의 철학으로 대물림됐다.
학창 시절 꿈을 향한 ‘도전과 응전’
김 대표는 서울 압구정지점으로 첫 발령이 나 출납 박스에서 근무하면서도 ‘어디에서 전문성을 찾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윽고 ‘은행에 있지만 유가증권 운용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대학 시절 접한 영화 ‘월스트리트’(1987년)가 그에게 펀드매니저의 꿈을 키우게 했다. 이듬해 초 은행 내 공모를 거쳐 만 27세에 꿈에 그리던 펀드매니저가 됐다.

그러나 김 대표는 대리 시절이던 2000년 안정적인 대형 은행을 박차고 나온다. 당시만 해도 직원 50명이 안 되는 신생 운용사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나은행 시절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파견 근무를 갔다가 당시 사장이던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을 만난 것이 그의 운명을 바꾼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미래운용에서 직접 설립과 운용을 맡은 ‘디스커버리’ 펀드로 국내 톱 펀드매니저로 올라선다. 순자산 2조원이 넘었던 디스커버리 펀드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전체 주식형펀드 가운데 매년 상위 1%에 올랐으며, 누적 수익률은 201.25%로 시장 수익률(99.91%)을 100%포인트 이상 압도했다.

업계 최고의 연봉을 받으며 스타 매니저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40대를 앞두고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선다.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코리아 데스크를 하고 싶다는 꿈을 실현할 기회가 왔다. 마침 세계적 운용사인 피델리티가 2004년 한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공부한 적도 없는 토종파였지만 무작정 지원했다.

김 대표는 피델리티에서도 압도적인 펀드 성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처음 출시한 ‘피델리티 코리아펀드’가 연 30%씩 수익을 내자 영어를 버벅대던 그를 보는 눈길도 달라졌다. “벤치마크를 18%포인트 가까이 웃돌자 회사 준법감시팀에서 ‘불법 의혹’을 제기하며 별도 조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오자 회사에선 글로벌 펀드까지 맡기더군요. 입사 1년 만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가 됐습니다.”
직원 대폭 늘리고…새로운 분야 도전
김 대표는 11년간 피델리티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부터 한국 대표까지 거친 뒤 국내 운용업계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에 2016년 KTB운용 대표직을 수락한다. 김 대표 취임 후 KTB운용의 가장 큰 변화는 60여 명이던 직원이 100여 명으로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새로 뽑은 직원만 80여 명에 달했다. 단순히 사람 수만 늘린 것이 아니라 세 개 본부를 신설했다.

KTB운용은 국내 주식, 국내 채권, 국내 부동산만 다루는 전형적인 중소형 자산운용사였다. 여기에 김 대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부동산까지 커버할 ‘대체투자부문’과 EMP(ETF Managed Portfolio) 펀드를 책임질 ‘멀티에셋 투자본부’, 코스닥벤처펀드 등을 다루는 ‘전략투자본부’를 추가했다. 중형 운용사지만 살아남고 성장하려면 대형사 못지않게 투자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해외 부동산 부문은 신설 1년 만에 굵직한 딜을 여럿 따내 2017년 해외투자 부문 전체 운용사 5위에 오를 정도로 빠른 시간에 성장했다.

특히 김 대표는 저금리 시대 속에서 “주식, 채권뿐 아니라 각종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 앞으로 주요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MP 펀드는 국내외 주식, 채권 외에도 원자재 등 각종 자산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형 운용사 인력과 자원으로는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김 대표는 EMP 부문에서 해외주식·해외채권·멀티에셋·자산배분형 4개 모든 라인을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자산 클래스를 보유한 운용사는 국내 대형사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그는 “우리 같은 초대형 모회사를 두지 않은 중소형 운용사가 생존할 길은 시류를 빨리 읽고 훌륭한 인재를 영입해 최고의 상품을 만드는 길뿐”이라며 “‘스탠드 얼론(stand alone·홀로서기)’하기 위해서는 도전 영역을 더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태우 대표는

△1967년 부산 출생
△1986년 서울 경성고 졸업
△1993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93년 하나은행 입행
△2000년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팀장
△2004년 피델리티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
△2006년 피델리티자산운용 한국 주식투자부문 대표
△2015년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국제금융학 석사
△2016년 KTB자산운용 사장


설지연/최예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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