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같은 반전이었다. 코로나19라는 ‘미지의 바이러스’가 세계 시장을 강타할 때만 해도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패닉에 빠진 증시는 두 달 만에 40% 가까이 추락했다. 전문가들은 바닥을 예측하느라 분주했다. 300일도 채 되지 않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코로나 재확산, 고평가 논란 등을 딛고 코스피지수는 1500포인트 넘게 치솟았다. 지금은 3000 너머를 말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보수적인 전문가들도 한국 증시의 거침없는 질주에 “상단을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19 공포에 짓눌렸던 코스피가 3000 고지에 올라선 여정을 돌아봤다.
1457→3027…동학개미가 쓴 '293일 드라마'

무던했던 ‘박스피’

작년 초, 한국 증시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2018년 이후 가장 좋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1월 2일 코스피지수는 1.02% 하락한 2175.17로 출발했다. 주가가 20년 가까이 박스권에 갇혀 있어서인지 기대도 없었다.

코로나 공포가 중국을 덮친 1월 하순.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때다. 그때만 해도 시장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간 증시를 짓눌렀던 중국과의 갈등이 해소될 것이란 기대에 증시는 분위기가 좋았다. 당시 화장품, 면세점 등 중국 관련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현실이 된 공포

코로나19 공포는 점차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작년 1월 28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위험도를 ‘보통’에서 ‘높음’으로 격상했다. 이후 신천지발(發) 코로나19 사태가 대구 지역을 덮치면서 국내 시장은 얼어붙었다. 전 세계 증시가 일제히 요동쳤다. 공포심이 극에 달하자 2월 마지막 한 주 동안 미국 3대 지수가 금융위기 이후 최대 낙폭으로 떨어졌다.

코스피지수는 3월 9일 2000선을 내준 뒤 속절없이 밀렸다. 국내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은 하루 새 50조원이 증발했다. 외국인들은 하루에 1조원이 넘는 돈을 빼갔다. 8년5개월 만에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코스피지수가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하는 데 20거래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외환위기(83일), 글로벌 금융위기(55일) 때보다 빨랐다.

‘동학개미’의 등장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한 각국 정부는 돈을 풀어대기 시작했다. “위기에는 유동성이 답”이라는 학습효과 덕이었다.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한도까지 내렸다. 그렇게 제로(0) 금리 시대가 시작됐다. 유동성 장세가 펼쳐진 계기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은 시장에 안도감을 줬다.

3월 19일 주가가 1400대로 내려앉자 기회를 본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W자 회복 같은 얘기를 떠들었지만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걱정하는 위기는 오지 않는다”며 매수 대열에 합류하는 사람은 늘어갔다. “매번 전투마다 패배했던 과거의 개미는 잊으라”고 말하는 듯 주가는 올라갔다. 외국인이 팔면 그걸 다 받아냈다. 이렇게 작년 한 해 개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63조8000억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개인들이 3000 시대의 주역으로 꼽히는 이유다.

대세가 된 머니무브

반등장은 새로운 주도주를 만들었다. ‘BBIG’로 불리는 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의 성장성에 투자자들이 몰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LG화학, 삼성SDI,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BBIG7’은 지난 한 해 80%가 넘는 수익을 냈다. V자 반등의 주연이었다.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주가는 옆으로 기었다. 대주주 양도세 논란, 코로나19 재확산, 미국 대선이라는 불확실성 등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11월 주가는 다시 튀어올랐다. BBIG에 이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시총 상위 종목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순환매도 있었다. 조선, 건설, 화학을 비롯한 경기민감주들이 돌아가면서 올랐다. 성장주와 가치주의 순환매라고 얘기되기도 했다.

2021년 들어서도 개인의 질주는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하루 키움증권에서만 신규 계좌가 4만 개 가까이 만들어졌다. 증시 대기 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 예탁금은 사상 최대치인 69조원을 넘어섰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 3000 시대가 개인투자자들의 주도로 열린 것은 주식이 국민들의 핵심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