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국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순매수액이 20조원을 넘었다. 작년의 여덟 배에 달하며, 지난 10년 동안의 순매수액을 합친 수준이다. 올해를 ‘개미의 해외투자 원년’으로 꼽는 이유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국민들의 재테크 수단은 부동산 아니면 국내 주식에 편중돼 있었는데 올해 큰 변화가 생겼다”며 “투자 범위가 넓어져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믿을 건 미국 주식"…서학개미, 올해 21조원 사들였다
2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8일까지 국내 투자자(개인과 기관 합산, 증권사의 자기자본 투자는 제외)의 해외 종목 거래금액은 1933억8358만달러(약 210조266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409억8539만달러) 대비 5배 가까이 늘었고, 직전 9년(2011~2019년) 합산 금액(1421억8804만달러)도 넘어섰다.

순매수금액은 더 크게 늘었다. 올해 이 기간 순매수금액은 194억5670만달러(약 21조1514억원)로 지난해(25억1111만달러)의 8배에 이르렀다. 과거 9년 순매수금액을 합산한 액수(68억2250만달러)의 3배에 달한다. 거래금액보다 순매수금액이 더 많이 증가한 것은 중장기 투자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투자 수익률이 중요하지, 한국 주식인지 미국 주식인지는 따질 이유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는 미국에 집중됐다. 순매수액을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가장 많은 173억9443만달러에 달했다. 이어 중국(11억2816만달러), 홍콩(9억539만달러), 일본(1억5505만달러) 순이었다. 유럽에서는 6657만달러어치를 순매도했다.

미국 편중 현상은 올 들어 더 심해졌다. 지난해 말에는 해외 주식 보유액 가운데 58.2%가 미국 종목이었다. 올해는 이 비중이 79.1%로 급등했다. 반면 중국, 홍콩, 일본 종목 보유 비중은 각각 같은 기간 6.7%포인트, 2.1%포인트, 7.4%포인트 줄었다.

종목별로는 대형 기술주 비중이 압도적이다. 테슬라(TSLA) 보유액은 74억6836만달러로 전체 해외 종목 보유금액(461억7948만달러)의 16.2%에 달한다. 이어 애플(AAPL·28억6688만달러), 아마존(AMZN·20억1896만달러), 엔비디아(NVDA·11억6033만달러) 순이었다. 중국 주식 중 가장 많이 보유한 건 7위에 오른 항서제약(7억4524만달러)이었다. 일본 주식은 넥슨(5억60만달러·10위), 홍콩은 텐센트홀딩스(4억2206만달러·11위)가 최대 보유 종목이었다.

투자자 나이대로 보면 2030 밀레니얼 세대가 해외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주식시장이 폭락했던 지난 3월 이후 테슬라 등 미국 주요 기술주를 순매수한 투자자의 60% 이상이 2030이었다. 경기 부천시에 사는 장지애 씨(32)는 “지난 4월 주식 계좌를 만든 뒤 첫 투자를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SBUX) 등 미국 종목으로 시작했다”며 “과거 미국 종목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2030세대의 금액 비중은 작은 편이다. 주요 미국 기술주의 순매수 금액에서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대로, 투자자 수에 따른 비중(60%대)에 못 미친다. 향후 이들이 경제활동 주력계층으로 부상하면 해외 종목 투자금액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해외 투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주의를 당부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성장주는 주가가 올라갈 때는 짜릿하지만 조정받을 때는 시장 평균보다 많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투자가 미국 초대형 기술주로 편중된 걸 배당주 등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편중에 대해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은 “미국 종목을 너무 많이 사는 것도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좋지 않다”며 “최근에는 한국 종목의 밸류에이션 매력도가 오히려 높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