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가 '트럼프 비토 위협' 무시한 이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23일(현지시간)은 지난 3월23일 뉴욕 증시가 바닥을 친 뒤 정확히 9개월 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미 증시는 쉼 없이 올랐고 나스닥은 연초에 비해 40% 넘게 상승했습니다.

이날도 뉴욕 증시는 강보합세를 나타냈습니다. 다우는 0.38%, S&P 500 지수는 0.07% 상승했습니다. 반면 나스닥은 0.29% 하락했습니다. 장 초반부터 상승세가 유지되면서 나스닥이 장중 사상 최고치를 다시 갈아치우고, S&P500은 0.7%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다만 장 막판 연말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상승폭을 상당부분 반납했습니다.
월가가 '트럼프 비토 위협' 무시한 이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전날 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부양책 거부 위협은 먹히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는 상·하원을 통과한 9000억 달러 규모 부양책에 대해 "코로나 경기부양법인데도 코로나와 거의 관계가 없다. 정말 수치스러운 것"이라며 1인당 현금 지급을 600달러가 아닌 2000달러로 높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명하지 않을 수 있다고 시사했습니다.

그 시각 S&P 500 주가지수 선물은 1%까지 급락했지만 곧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날 뉴욕 증시는 장 출발부터 오름세를 보였습니다.

마감된 지수를 보면 아시겠지만 여행주, 에너지주, 금융주 등 경기민감주들이 장을 주도했습니다. 소형주인 러셀 2000 지수는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습니다.

달러인덱스도 소폭 떨어졌고(브렉시트 협상 타결 임박 소식으로 영국 파운드화가 강세를 보인 요인도 있습니다) 서부텍사스원유 가격도 올랐습니다(미국의 전주 원유재고가 56만 배럴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채권 시장에서도 국채 금리가 10년물 기준 한 때 0.969%까지 치솟아 연 1%대를 위협했습니다. 올 3월 이후 최고치였던 0.984%대에 육박한 것입니다.
월가가 '트럼프 비토 위협' 무시한 이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경제 지표는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 11월 개인소비지출(PCE)은 전달보다 0.4% 떨어져 7개월 만에 처음 감소했습니다. 개인 소득은 1.1% 하락해 예상보다 큰 폭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월가가 '트럼프 비토 위협' 무시한 이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주간 실업급여 청구자수는 전주보다 8만9000명 줄어든 80만3000명을 기록했습니다. 3주 만에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지만, 여전히 80만 명대라는 기록적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월가가 '트럼프 비토 위협' 무시한 이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 모든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금융시장 전반에서 '백신 보급+부양책 통과→경기 회복' 시나리오에 무게를 실은 겁니다. JP모간의 경우 9000억 달러 부양책 실시를 전제로 내년 1분기 성장률 전망을 기존 -1.0%에서 0.5%로, 2분기는 4.5%에서 5.0%로 조금씩 높였습니다.
월가가 '트럼프 비토 위협' 무시한 이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심지어 아메리칸에어라인은 부양책 지연 소식에도 (부양책 지원을 가정해) 일시해고했던 직원들을 다시 고용하는 계획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트럼프의 협박이 부양책 집행을 막지 못할 것이란 판단 때문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트럼프는 부양책 집행을 조금 더디게 만들 수는 있지만 막을 순 없다"며 "오히려 이번 일이 더 많은 부양책을 촉발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는 비토(거부권)를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비토를 한다면 쉽습니다. 상·하원은 이번에 대통령의 비토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수의 의원이 찬성 투표를 했기 때문입니다. 거부권을 무력화하려면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비토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명시적으로 비토하겠다고 밝히지 않고 "수정하지 않으면 차기 행정부가 코로나19 구제 패키지를 처리해야만 할 것"이라고 언급한 건 그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고 의회가 트럼프가 주장하는 1인당 2000달러 지원방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낮습니다. 공화당 의원의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의 리더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먼저 공화당 리더들부터 설득하라. 우리는 준비됐다"고 한건 이런 공화당 내 상황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겁니다. 민주당은 하원에서 지원금을 2000달러로 늘리는 방안을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의 리더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총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토하기는 어렵고, 의회도 법안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에겐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서명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겁니다. 이를 '포켓 비토'(pocket veto)라고 합니다. 법안이 책상 앞에 오면 주머니에 넣어둔 채 가만히 있는 것이죠.

대통령은 의회가 법안을 보내오면 서명을 위해 최대 10일간(일요일 제외) 법안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내년 1월3일까지 자신의 책상에서 붙잡아둘 수 있는 겁니다.

마침 이번 의회 임기는 1월3일에 끝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서명하지 않고 10일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발효됩니다. 트럼프가 완전히 막을 방법은 없고 일요일까지 포함해 최대 12일간 늦춰진 채 어쨌든 법안은 시행될 것이란 얘기입니다.

최악의 경우 트럼프가 거부권을 행사하고, 의회가 이를 무효화시키지 못한다고 가정해도 내년 1월20일 이후 새로운 행정부와 의회가 들어서 최우선적으로 이 법안을 가결할 겁니다. 그럴 때에는 당초 예정보다 27일까지 지연될 수 있습니다.
월가가 '트럼프 비토 위협' 무시한 이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가장 큰 문제는 많은 미국인들이 그새 고통을 겪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오는 26일 팬데믹 실업급여, 퇴거명령 유예 등의 조치가 종료되면 피해가 커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부양책은 2021년 예산안과 함께 통과됐기 때문에 연방정부 셧다운도 불가피합니다. 임시예산안이 종료되는 오는 28일부터는 210만 명에 달하는 연방공무원들이 일시 해고에 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이런 셧다운 사태를 막기 위해 의회가 또 다시 단기예산안을 통과시키고 트럼프가 거기에 서명할 수는 있겠지요.

어쨌든 내년 1월3일까지는 부양책 수표가 미국인들 손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여기엔 고려해야할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1월5일이 바로 조지아 주에서 연방상원의원 두석이 걸린 결선투표가 치러진다는 것이죠. 트럼프의 몽니로 부양책 집행이 이 때까지도 지연될 경우 어느 당이 유리할까요?
월가가 '트럼프 비토 위협' 무시한 이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당연히 민주당입니다. 민주당은 당장 1인당 2000 달러 지급에 찬성하고 나섰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몽니를 부리고 있고, 공화당은 이를 막아내야 할 판입니다.

게다가 공화당의 켈리 뢰플러(50)와 데이비드 퍼듀(71) 두 후보는 사실 트럼프가 지원해온 사람들입니다. 특히 뢰플러는 트럼프 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죠.

이날 민주당의 라파엘 워녹(51)과 존 오소프(33) 두 후보는 트위터를 통해 2000달러에 찬성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뢰풀러와 퍼듀는 "노 코멘트"를 외쳤습니다.
월가가 '트럼프 비토 위협' 무시한 이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판이 이렇게 돌아가면 민주당이 두 석을 모두 이겨 상·하원 모두를 지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앞서고 있습니다) 이는 더 많은 재정 지출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결국 최악의 경우는 수표 지급이 몇 주 미뤄지는 것이고, 경우의 수로써 부양책 수표가 인당 2000달러로 증액되거나 내년 재정 지출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트럼프가 갑자기 부양책을 거부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정말 불쌍한 미국인들에게 1인당 2000달러씩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사실 그는 이번 부양책 협상에서 완전히 배제됐습니다.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한 음모론 설파에 골몰하고, 그리고 골프만 치러다녔지요.

월가에선 소외된 트럼프가 마지막으로 관심을 끌기 위해 행위라고 추측합니다. 끝까지 쇼맨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4년 재출마를 위해 계속적으로 관심을 끌 필요가 있으니까요.

혹은 자신의 대선 불복을 공화당이 지지하지 않는 데 화가 나서 공화당을 괴롭히는 것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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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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