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시장에서 구리는 ‘닥터 코퍼(Dr. Copper)’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금속 덩어리를 ‘박사님’이라 부르는 것은 웬만한 전문가보다 경기를 잘 맞힌다는 이유에서다. 구리는 전기·전자부품부터 건설·선박·운송업까지 다양한 산업에 쓰인다. 가격 흐름이 경제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 경기의 선행지표로 통한다.

그런데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비트코인 가격이 구리와 매우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 들어 각국의 코로나19 1차 봉쇄령 이후 비트코인 시세가 구리를 밀접하게 추종해왔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고공행진하는 점도 닮았다고 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구리 가격은 t당 8000달러 선까지 올라 2013년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올봄만 해도 5000달러를 밑돌다 최근 2만달러를 뛰어넘어 신고가 행진을 이어갔다.

골드만삭스는 비트코인이 금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내놨다. 안전자산으로서 금의 위상을 완벽히 대체하긴 어렵겠지만 일부는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프 커리 골드만삭스 상품부문 수석연구원은 블룸버그방송에 출연해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헤지를 위한 대체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이 역대 최고가를 뚫은 데는 월스트리트 ‘큰손’들의 영향이 컸다. CNBC는 “2017년 비트코인 랠리는 개인투자자가 이끈 반면 최근 상승세는 월가 거물급 투자자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가상화폐 분석업체 체인애널리스는 개설 1년 미만 신규 계좌에 1000비트코인 이상을 구매한 투자자들이 지난 9월 이후 기록적인 수요를 창출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3개월 동안 총 50만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신규 투자자의 매수세가 가속화된 시기에 비트코인 값이 두 배 이상 올랐다는 설명이다.

폴 튜더 존스, 스탠리 드러켄밀러 등 억만장자들이 투자에 나섰고 피델리티, JP모간, 페이팔 등이 가상화폐 관련 사업에 진출한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운영하는 스퀘어 등도 가상화폐를 대량 구입하며 상승장을 이끌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