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새해부터 줄줄이 대규모 자금 조달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1월에만 채권과 주식 발행 등을 통해 수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얼어붙었던 투자심리가 회복될 때 필요한 자금을 최대한 마련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投心 살아난 지금이 적기"…연초 기업 자금조달 줄잇는다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다음달 중순 회사채를 발행해 3000억원가량을 조달할 계획이다. 만기는 3~20년 수준에서 검토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SK증권이 발행 주관을 맡았다. 조달한 자금은 차입금 상환과 운영에 사용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을 시작으로 다음달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잇따를 전망이다. GS(1200억원)와 롯데칠성(1600억원)이 비슷한 시기 1000억원 이상의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설립 후 처음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채권 발행에 나선다. 이 회사는 다음달 말 2500억원 규모 그린본드를 발행할 계획이다. 그린본드는 발행 목적이 친환경 관련 투자로만 제한된 채권이다. 이 밖에 롯데렌탈, 신세계, SK이노베이션 등도 대규모 채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채권시장에선 올초와 마찬가지로 내년 1~2월에도 10조원 규모가 넘는 회사채가 쏟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으로 회사채 투자심리가 차츰 개선되자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연초는 신규 운용자금을 쥔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시기라는 점도 기업들을 채권 발행에 뛰어들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주식발행시장에서도 대형 유상증자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다음달 포스코케미칼(1조1779억원)을 시작으로 대한항공(2조5000억원) 롯데리츠(3565억원) 씨에스윈드(3503억원) 필룩스(1059억원) 등이 내년 1분기 신주 발행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다. 대한항공의 유상증자는 국내 기업 사상 최대 규모(주주배정 방식 기준)로 기록될 전망이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증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만큼 기업들이 주식을 활용해 많은 자금을 끌어모으려 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주가가 상승세를 이어갈수록 조달 가능 금액이 늘어나고, 주주들의 증자 참여를 유도하기도 쉬워서다. 공매도가 금지된 것 역시 주식을 자금 조달 수단으로 삼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동안 국내에선 기업이 유상증자를 발표하면 손쉽게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여러 기관이 공매도를 통해 신주 발행가격을 떨어뜨린 뒤 해당 기업의 증자 청약에 참여하곤 했다.

IB업계는 내년 초 기업들이 양호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하면 다른 기업들도 뒤이어 공격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담당 임원은 “아직 실물경제가 확실히 회복세로 돌아선 게 아니기 때문에 기업들은 가능한 한 많은 현금을 확보해두려는 분위기”라며 “시장 상황이 괜찮다는 것만 확인되면 적극적으로 자금 조달에 뛰어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진성/이현일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