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은 미국에 집중됐다. 미래를 이끌 기업들이 모여 있는 시장이었다. 국내 투자자도 한국 다음으로 나스닥시장을 봤다. 신흥국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달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흐름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낭보까지 이어지며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으로 옮겨가는 ‘머니 무브’가 나타나고 있다. 달러 약세에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까지 더해져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신흥국 주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골드만삭스, 크레디트스위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잇따라 신흥국을 내년 투자가 유망한 ‘스위트 스폿’으로 지목했다. 신흥국 중에도 아시아 지역 투자 비중을 늘리라는 의견이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2013년 이후 가장 강한 신흥국 유입세”

지난달 신흥국 시장에는 765억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주식시장에 398억달러, 채권시장에 367억달러의 뭉칫돈이 들어왔다. 지난 10월 순유입액 235억달러를 세 배 웃도는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4분기 신흥국으로의 자금 유입세는 2013년 1분기 이후 가장 강도가 세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IB 사이에서도 신흥국에 대한 뚜렷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지난달 글로벌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내년 자산군 중 신흥국 주식의 수익률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펀드매니저들은 또 미국 소형주와 신흥국 주식 비중을 전월 대비 가장 많이 늘렸다고 답했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IB들도 내년 신흥시장 강세를 전망하며 신흥국 주식과 통화 비중을 늘리라고 권했다.

신흥국 시장에 대한 낙관론이 퍼지는 배경은 미국 대선이라는 불확실성이 제거돼 시장의 변동성이 줄었고,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경제 회복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 변동성이 줄면 위험자산 선호도가 높아져 신흥국에 돈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 또 경기 회복은 원자재 수요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원을 많이 수출하는 신흥국 경제에 호재로 작용한다. 달러 약세는 신흥국 주식시장의 상대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코로나19로 낙폭이 컸던 신흥국의 저평가 매력도 부각되고 있다.

한국 제외 톱픽은 인도

국내외 투자업계에서는 신흥시장 중에도 코로나19를 상대적으로 잘 막은 한국,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을 유망 지역으로 보고 있다. 주요 글로벌 IB는 인도도 내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IIF에 따르면 지난달 글로벌 자금이 가장 많이 몰린 지역은 인도와 중국이었다. 각각 80억달러가량의 자금이 유입됐다.

인도 센섹스지수는 지난 4일 45,079.55로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도의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은 -23.9%(전년 동기 대비)였지만 내년 상반기에는 10%를 웃도는 고성장 국면으로 돌아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경식 플레인바닐라투자자문 대표는 “인도 중앙은행이 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추면서 주식이 10년 만에 가장 매력적인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인도에 투자하려면

인도는 투자가 유망하다고 해도 국내에서 개인 투자자가 직접 투자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외국인의 직접 투자를 까다롭게 해놨기 때문이다. 다만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 HDFC은행, 인포시스 등 시가총액 상위주 몇 개는 미국이나 영국 증시에 복수 상장돼 있어 매수할 수 있다.

펀드 투자가 가장 쉬운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패시브형보다는 액티브형 가입을 추천했다. 다른 신흥국처럼 인도 증시도 금융주 비중이 높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시장은 성장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융주 비중이 높은 인덱스펀드로는 수익을 내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실제 인도 주식형 공모펀드 25개 중 레버리지 제외 최근 한 달 수익률이 가장 높은 상품은 대형주보다는 중소형주 위주인 ‘삼성클래식인도중소형FOCUS’였다. 연초 대비로는 5%대, 6개월 수익률은 40%를 기록하고 있다. 성장 업종인 헬스케어나 정보기술(IT)주가 많이 담긴 펀드는 ‘피델리티인디아’ ‘삼성클래식인디아’ 등이다.

중국은 대형 기술주보다 본토 주식을

중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투자 지역이다. 골드만삭스는 2021년 투자 보고서에서 “내년 주식시장의 스위트 스폿은 동북아 ‘디지털 존’”이라며 한국과 중국, 대만 등의 주식을 추천했다. 중국 IT 대형주의 강세를 전망하면서도 코로나19 이후 강한 실적 회복세가 예상되는 경기순환 업종을 눈여겨보라고 조언했다.

자산운용업계에선 올해 많이 오른 중국 기술주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플랫폼기업 반독점법 개정안으로 지난달 알리바바, 징둥닷컴, 바이두 등 대표 기술주의 타격이 컸기 때문이다. 중국 본토의 CSI300이나 커촹반(STAR50) 종목들이 규제 영향권 밖에 있어 안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펀드 수익률은 최근 엇갈리고 있다. 연초 대비 성과로는 기술주 비중이 큰 ‘미래에셋차이나업종대표’ ‘미래에셋차이나그로스’ 등이 가장 높지만 최근엔 ‘KB중국본토A주’ ‘KB스타중국본토CSI300’ 등의 수익률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KB중국본토A주 펀드는 레버리지 상품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최근 한 달 수익률이 10%를 넘어선다. 이 펀드엔 창청자동차, 완화화학, 싼이중공업 등 본토 경기민감주가 많이 담겨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