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사상 첫 2700을 돌파한 4일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원90전 내린 1082원10전에 마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코스피지수가 사상 첫 2700을 돌파한 4일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원90전 내린 1082원10전에 마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코스피지수는 ‘10년 박스피’에 갇혀 있었다. 2000~2600을 오갔다. 10년간 특별한 매수주체가 없었다. 시장의 ‘큰손’인 외국인과 연기금은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외국인은 적정 수준으로 한국 주식을 보유하는 정도였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연기금은 지수가 낮아지면 국내 주식을 사고, 지수가 높아지면 파는 전략을 반복했다. 기관 주도 장세 속에 코스피지수는 박스권에 갇혔다. 지친 개인 투자자들은 시장을 떠났고, 펀드는 환매가 이어졌다. 시장을 떠난 돈이 부동산에 몰리며 ‘부동산 불패’ 신화를 만들었다. 코로나19는 이런 10년의 거래 패턴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개인과 외국인이 받치는 시장

동학개미에 외국인도 랠리 동참…"아직 사고싶은 주식 많다"
코스피지수가 4일 2731.45로 2700선을 가볍게 넘어섰다. 10년 박스권을 뚫고 3000으로 가는 길목에 서게 됐다. 시장에서는 수급 주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산업 구조가 신성장산업 위주로 재편된 것, 환율 하락 등을 배경으로 꼽는다.

지난 3월 코로나19 폭락장을 계기로 시장으로 들어온 ‘동학개미’들은 지수 반등을 이끈 주역이었다. 연도별 개인 수급을 살펴보면 지난 5년간 2018년을 제외하고 개인 투자자는 매년 주식을 산 것보다 판 규모가 더 많았다. 2018년 개인 순매수 규모는 7조원이었다. 처음으로 2500선을 돌파한 계기였다. 올해 개인 순매수 규모는 그 6배에 달하는 43조원이다.

11월부터 외국인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미국 대선 이후 달러 약세 기조가 이어지는데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글로벌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달 신흥국 시장에 765억달러(약 83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순유입됐다. 주식시장에 398억달러, 채권시장에 367억달러의 자금이 들어갔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로 신흥국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3월에는 900억달러가 순유출됐다.

단순히 한국이 신흥국에 포함돼 있다고 해서 돈이 몰리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내년 증시 전망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그중에서도 한국 주식에 투자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MSCI아시아태평양(일본 제외)지수 총수익률이 18%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중국과 한국 주식을 ‘비중 확대’하라고 권했다. 크레디트스위스(CS)도 한국 시장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선호하는 톱픽으로 꼽았다.

‘사고싶은 주식’이 많아졌다

내년 초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마이크론 정전 사고가 회복 시점을 앞당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신흥국으로 들어오는 패시브자금에 더해 반도체 업황 회복에 대한 ‘신호’를 보고 들어오는 액티브 자금도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는 2017~2018년 반도체 랠리 때와 다른 점으로 주도주가 다양해진 점을 꼽았다. 신성장산업을 위주로 한국의 산업 구조가 빠른 속도로 재편됐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이 모두 △반도체(삼성전자, SK하이닉스) △전기차(LG화학 삼성SDI 현대차 기아차) △바이오(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인터넷플랫폼(네이버 카카오) 등 미래형 영역에 속해 있다. 플랫폼 사업을 제외하면 모두 각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1~2위를 다투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여기에 더해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철강 조선 화학 등 경기민감주까지 반등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셀트리온 셀트리온제약 셀트리온헬스케어 두산솔루스 키움증권 등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현대차 기아차 포스코 현대제철 등은 연고점을 돌파했다.

한 펀드매니저는 “시총 상위 종목 대부분이 ‘사고 싶은 주식’”이라며 “과열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살 종목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아직 중소형주가 크게 오르지 못하고 있어 종목 장세에 대한 기대감도 남아 있다. 배터리 장비 소재주나 5세대(5G) 이동통신 관련주는 내년 초 다시 한번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정성한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알파운용센터장은 “코스피지수가 3000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급과 기업 경쟁력이 함께 받쳐줘야 한다”며 “지수가 올라갈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에도 신흥국에 우호적인 환율 효과가 이어질지 여부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재연/최예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