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한국 증시는 10년 만에 호황을 맞이했다. 코스피지수가 2010년부터 이어져온 박스권을 돌파해 2500대로 올라섰다. 증권업계와 투자자 사이에서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주식형 펀드 매니저 사이에서는 ‘최악의 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익률과 관계없이 펀드가 해지되며 급속도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매 행렬은 ‘동학개미’의 멘토로 알려진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와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이 운용하는 펀드도 비켜가지 못했다.
펀드 환매…존리·강방천도 못 비켜갔다

올해 4조1600억원 순유출

16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에서 연초 이후 4조1662억원이 순유출됐다. 이달에만 1817억원이 빠져나가는 등 유출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연초 21조8657억원이던 설정액도 이날 17조6995억원으로 줄었다.

펀드업계에서는 주식시장이 생긴 이후 이 정도의 위기는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차익실현을 하려는 물량과 직접 투자로 넘어가려는 물량이 맞물리면서 유례없는 환매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수가 상승을 거듭할수록 펀드 해지가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차익을 실현한 펀드 가입자 중 상당수가 직접 투자로 전향하고 있다”며 “지수가 상승하고 펀드 수익률이 올라가도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수익률 ‘톱 펀드’도 직격탄

펀드산업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수익률 최상위권 펀드에서도 환매 행렬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라는 상품 자체의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액티브 주식형 펀드는 연초 대비 설정액이 반토막 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 수익률 1위인 ‘미래에셋한국헬스케어1호’가 대표적이다. 이 펀드는 연초 이후 51.23%의 수익률을 올렸지만 연초 800억원이 넘던 설정액이 64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배당주 펀드 수익률 1위인 ‘우리중소형고배당1호’도 마찬가지다. 이 펀드는 연초 이후 40.6%의 수익률을 올렸다. 하지만 연초 1229억원이던 설정액은 820억원으로 감소했다.

동학개미의 멘토로 알려진 존 리가 대표로 있는 메리츠자산운용의 ‘메리츠코리아1호’도 올해 1439억원이 순유출됐다. 현재 설정액은 3985억원으로 줄었다. 강방천 회장의 대표 펀드인 ‘에셋플러스코리아리치투게더1호’도 373억원이 빠져나갔다. 현재 설정액은 1096억원이다. 올해 환매 속도라면 조만간 설정액 1000억원이 깨지면서 ‘군소 펀드’로 전락할 위기다. 이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22.44%로 액티브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인 10.81%를 두 배 이상 웃돈다.

“고사 위기 펀드도 속출”

펀드 설정액이 100억원 밑으로 내려가며 존립이 위태로운 펀드도 나타나고 있다. ‘신한BNPP뉴그로스중소형주펀드’가 그런 사례다. 이 펀드는 2018년부터 액티브 주식형 펀드 수익률 최상위 명단에 항상 이름을 올렸다. 올해 수익률도 29.18%로 시장 평균을 3배 가까이 웃돈다. 하지만 연초 이후 132억원이 빠져나가며 설정액이 8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환매가 한꺼번에 몰릴 경우 펀드가 급속도로 망가질 수 있다는 게 매니저들의 전언이다. 장기투자 종목까지 팔아치우며 환매 자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대 수익률이 높은 종목에 자금을 집중할 수 없어 펀드 전체 수익률을 끌어올리기도 힘들어진다.

최근 운용사들이 보유 종목의 지분을 축소하는 이유도 펀드 환매에 있다는 분석이다. 15년 경력의 한 펀드매니저는 “운용사들이 보유 지분을 줄였다고 해당 종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대부분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눈물의 손절’을 하는 물량”이라고 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