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M&A·사외이사까지…경영 전방위 개입하겠다는 국민연금
다음달 기금위서 의결 전망
경영계는 과도한 간섭에 우려
"국민연금이 기관투자가들에게
주주활동 '표적기업' 찍어주는 셈"
경영계는 가이드라인 시행에 우려를 밝히고 있다. 국내 경제에 비해 덩치가 큰 ‘연못 속 고래’ 국민연금이 기업 이사회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300여 곳이다. 10% 이상을 가진 상장사도 100여 곳에 이른다. 자본시장의 ‘슈퍼 갑’으로 불리는 국민연금 가이드라인은 국민연금의 투자 지분만큼의 영향력을 갖는 게 아니다. 국내외 기관투자가들도 국민연금의 규정과 판단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국민연금이 주주활동의 ‘표적’이 될 기업을 찍어주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사회가 미리 승계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 규정뿐 아니라 적대적 인수 시도에 대한 경영권 방어를 제한한 규정도 비판받고 있다. 새로 도입되는 이사회 가이드라인 잠정안은 ‘기업이 경영진이나 이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전환사채 등)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증권이나 신주를 발행하여 기업의 자본구조를 변경하거나, 인수합병(M&A) 등의 경영 수단을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기업 재무담당 임원은 “얼핏 보면 그럴듯하지만 현실에선 재무구조 개선이나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경영 활동까지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최근 산업은행이 한진그룹의 아시아나 항공 인수를 지원하고 나선 것 역시 국민연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잘못된 행보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업계에선 산은이 KCGI(강성부펀드)를 중심으로 한 3자 연합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대주고, 핵심 자회사인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 같은 자금 지원은 정부로선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현 경영진의 이익을 지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이드라인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사회 가이드라인을 확정한 뒤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기업에 사외이사 후보 선임을 요구하기 위한 사외이사 후보군을 만들 계획이다. 이 때문에 ‘정부 측 대변인’이 기업 이사회에서 한 자리씩 차지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라고 강변하지만 정권을 잡는 쪽에선 수백 명의 밥벌이를 챙겨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경영계 관계자도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국민연금이 뽑은 인사들의 독립성을 신뢰할 수 있겠냐”며 “사외이사 풀이 실현된다면 연금 사회주의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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