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28일 15:43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와 계열 시중은행의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이 빠르게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폭풍 및 경쟁 심화에 대비해 높은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여유 자본을 쌓아두려는 움직임이다. 올해 들어 역대 최대 순이익을 발표하고 있는 은행산업의 밝지 않은 미래를 암시하는 단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 영구채 발행 4조 넘어

27일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사와 계열 시중은행이 올 들어 발행한 영구채는 3조8900억원에 달한다. 신한은행이 다음달 발행하는 3000억원 영구채를 더하면 4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지금까지 영구채 발행이 가장 많았던 지난해 2조1650억원의 두 배 가까운 규모다.
은행산업의 명암…사상 최대 이익 vs 사상 최대 영구채
KB금융은 지난 20일 발행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영구채 5000억원을 포함해 올들어 1조30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했다. 신한금융은 4500억원의 영구채를 발행했고 신한은행도 지난 2월 2400억원의 영구채를 발행한데 이어 다음달 2000억원 추가 발행을 앞두고 있다. 하나금융 역시 올들어 1조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했다. 우리금융는 지난 23일 발행한 2000억원을 포함해 올해 9000억원의 영구채를 발행했다. 우리금융은 작년에도 영구채로 1조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은행들의 영구채 발행은 증자 없이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 규제비율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구채는 명목만기와 무관하게 발행사가 만기를 계속 연장할 수 있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KB금융지주는 지난 4월 푸르덴셜생명을 2조3400억원에 인수하는 데 따른 부담을 덜기 위해 대규모 영구채 발행에 나섰다. 신한금융 역시 지난해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를 인수하는 데 따른 부담으로 영구채를 발행했다.

영구채는 자본으로 인정받지만 주식과 달리 주주 의결권이 없어 경영권 방어에도 유리하다. 신한금융은 작년 IMM에 이어 지난달 어피너티와 베어링PEA 등 사모펀드(PEF)를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총 2조원 가량의 자본을 확충했다.

○수익성 저하에 대한 우려

일각에선 영구채를 과도하게 발행하면서 은행 등 금융사 수익성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은 지난 3분기에 뛰어난 실적을 냈으나 불안요소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신한금융은 이날 3분기 누적 순익 2조9502억원으로 역대 금융지주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KB금융도 3분기까지 누적 순익 2조8779억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속을 들여다보면 KB금융의 경우 푸르덴셜생명 인수에 따른 염가매수차익(1450억원) 등 1회성 이익이 반영됐고, 이익 창출력을 나타내는 순이자마진(NIM)은 작년 1분기 1.98%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3분기엔 1.77%까지 내려왔다. KB금융그룹 총 자산이 2018년말 479원(신탁자산 제외)에서 올 3분기말 605조원으로 급성장했으나 순이익 성장은 더디다는 얘기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자 외에 실직·폐업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상환능력이 감소한 일반 연체자의 상환유예를 강제한 점도 시한폭탄으로 지적된다. 이들 여신이 부실화될 경우 충당금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구채는 금리가 연 3%대(5년물 기준)로 연 1%대인 은행채에 비해 비싼 이자를 지불해야한다. 옵션 만기때 상환하지 않으면 이자를 올리는 조항을 넣기도 한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2%대임을 감안하면 은행 실적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신한금융의 주가는 최근 3만원 수준으로, 1년 동안 20% 넘게 하락했다. KB금융은 지난 1년 동안 4만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