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증시에서 6조원어치를 팔아치운 기관이 그동안 많이 오르지 못한 경기민감주와 소외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올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승장을 이끈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 관련 성장주는 대거 매도했다. 4분기부터 증시 변동성이 커질 것에 대비해 목표 수익률 관리(윈도 드레싱)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장주 내다판 기관, 경기민감주 사들인다

기관 한 달간 6조원 매도…차익실현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기관은 국내 주식시장(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에서 총 5조8615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5거래일을 제외하고 9월 내내 주식을 내다 팔았다. 순매도액은 4조원에 달한다.

지난달 기관이 가장 많이 판 종목은 삼성전자였다. 6828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어 네이버(5263억원), LG화학(4018억원), 카카오(2700억원), 현대자동차(2472억원), 한화솔루션(2227억원) 등을 가장 많이 팔았다. 바이오주인 셀트리온(1784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1380억원)와 게임주 넷마블(1338억원)도 기관 순매도 상위 10개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기관이 많이 판 종목은 최근까지 증시를 주도했던 BBIG 업종이 대부분이었다. 연말 수익률 결산을 앞두고 올해 들어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종목을 팔며 차익실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3월 저점 대비 9월까지 이들 종목의 상승률은 높았다. 삼성전자가 37% 올랐고, 네이버(107%), LG화학(184%), 카카오(172%), 현대차(170%) 등은 100~200%에 달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경기민감주 낙폭과대주로 눈돌려

성장주를 집중 매도한 기관은 경기민감주와 낙폭과대주를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다. 지난달 기관 순매수 10위 종목에는 SK하이닉스(3411억원)를 비롯해 포스코(1809억원), 삼성전기(1429억원), 기아자동차(862억원) 등이 포함됐다. 올해 기술·성장주 랠리에서 한발 비켜나 주가가 지지부진했던 종목들이다. 기관 순매수 1위인 SK하이닉스는 3월 저점 이후 지난달까지 21.7% 오르는 데 그쳤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59.7% 상승했다. 포스코는 같은 기간 42%, 삼성전기는 62% 수익률을 기록했다.

만도(561억원), 호텔신라(559억원), LG전자(541억원), 롯데케미칼(351억원) 등 경기민감주에 속한 종목을 사들인 것도 특징이다. 순매수 상위 종목 중 BBIG 업종에 속한 종목은 SK바이오팜이 유일했다. SK바이오팜도 상장 직후를 제외하면 줄곧 주가가 하락했다.

증권업계에서는 기관이 4분기 증시 변동성 확대를 우려해 수익률 관리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올 한 해 많이 오른 종목을 팔고, 앞으로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종목이나 상승폭이 크지 않았던 종목을 매수하면서 연말 포트폴리오 관리에 나섰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 3분기 실적 시즌이 본격화하는 만큼 개인투자자도 실적 가치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는 게 낫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4분기는 유동성 장세에서 실적 장세로 넘어가는 동시에 조정 국면이 나올 수 있다”며 “지난 6월처럼 성장주보다는 가치주, 방어주보다는 경기민감주의 반등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오태동 NH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차익실현 매물이 나와 주가는 당분간 2200~2450선 박스권 내 등락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박스권 상단에서는 성장주를 줄이고 가치주를 늘리는 전략이, 하단에서는 반대로 성장주를 늘리고 가치주를 축소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