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1000조원 눈앞…또 제기된 분할론
4년 후에는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 국민연금을 분할해 운용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 다시 제기됐다. 기금 간 경쟁을 통해 국민연금 전체의 역량을 높이고 국내 시장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부터 종종 나왔던 주장이지만, 1000조원을 눈앞에 둔 지금 체감하는 ‘온도’가 다르다. 분할론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기금을 쪼개서 운용하면 더 좋을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제각각이다.

“750조원 국민연금, 너무 크다”

국민연금 1000조원 눈앞…또 제기된 분할론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11일 내놓은 ‘2020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를 통해 국민연금의 장기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기금의 분할 운용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말 기준 국민연금기금 적립금은 749조3000억원에 달한다.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G)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입법조사처는 “시장에서 국민연금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전술적 자산배분(TAA)을 통한 성과 제고에 한계가 있다”며 “자산 비중을 조정할 때도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 대안으로 입법조사처는 기금의 분할 운용을 제시했다. 국민연금을 각각 100조~200조원가량 운용하는 복수의 기금으로 나눠 각각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은 기금운용본부가 도맡고 있다. 기금 분할 운용을 통해 기금 간 경쟁을 유도하고, 복수의 독립적 조직이 다양한 관점으로 투자하게 함으로써 기금 전체의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입법조사처의 생각이다.

국민연금 분할 운용론은 2000년대 중반부터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여러 번 정부 안으로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정권 초기 기금 분할 등을 논의했지만 이내 흐지부지됐다.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 이후 기금 분할론이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재이전을 시사하는 정치적 의미를 갖게 돼 부담이 커진 것도 한 이유다.

분할 실효성 의견 엇갈려

국민연금 1000조원 눈앞…또 제기된 분할론
분할의 실효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분할에 찬성하는 입장은 △지나친 국내 시장 영향력 △자산 운용상의 비효율성 △운용주체가 하나일 때 생길 수 있는 편향된 포트폴리오 리스크 등 거대 기금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금의 분할 운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정부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분할 이후에도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되기 어렵다는 점 △거대 연기금이 가질 수 있는 협상력 등을 반대의 근거로 제시한다.

국민연금보다 먼저 기금 거대화의 문제에 직면한 글로벌 연기금들은 해외투자 확대, 직접 운용 축소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완화하려고 시도했다. 기금 분할 운용 전략도 자주 거론되지만 실제 채택한 곳은 스웨덴 공적연금(AP)이 유일하다. 1960년 처음 기금을 분할했고 2001년 6개 분할 체제를 구축했다. 다만 운용 비용은 상승하고 기금 간 수익률은 거의 비슷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입법조사처는 선행 사례의 부정적인 면에만 매몰되지 말고 현 문제 해결을 위해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준행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분할을 통해 각 운용 단위가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각자의 강점을 살려 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한다면 충분히 도입을 검토해볼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