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끌어와 배당…美 기업들 체력 약화, 유보금 든든한 한국 기업이 더 돋보여"
“지금은 한국에 투자하는 게 안전해 보입니다. 경제가 탄탄하고 세부적으로 봐도 좋은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이건규 르네상스자산운용 공동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최근 수년간 통했던 상식들이 달라지고 있다”며 “옛날엔 미국이 가장 안전한 투자처였지만 지금은 한국이 더 안전해 보인다”고 말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한국이 전분기 대비 -3.3%, 미국은 -9.5%였다. 그는 “기업을 봐도 한국 기업은 수년간 쌓은 유보금 덕에 잘 버티고 있지만, 미국 기업은 부채를 끌어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하면서 체력이 약해진 상태”라고 했다.

르네상스자산운용은 요즘 주목받는 사모펀드 운용사다. 가치투자로 유명한 VIP자산운용에서 17년간 펀드를 운용했던 이 대표와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로 15년 동안 일했던 정규봉 대표가 지난해 2월 트러스톤멀티자산운용을 인수해 이름을 바꿔 출범했다. 가치투자를 기본으로 하지만 자산가치만 보고 투자하지는 않는다. 이 대표는 “회사가 아무리 순현금을 많이 갖고 있어도 투자도 배당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이런 기업에는 잘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주가지수는 많이 올랐지만 개별 주식을 보면 좋은 투자처가 아직 많다고 했다. 가전·가구, 인터넷 쇼핑, 전자 결제, 반도체 소재, 정보기술(IT) 부품 업체 등이다. 그는 “코로나로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가전이나 가구를 새로 바꾸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특히 가전·가구를 온라인으로 사면서 판매량뿐 아니라 마진(이익률)도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을 통해 새로운 시장이 열린 업종이나 종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내수 산업에서 수출 산업으로 변하고 있는 음식료, 코로나19를 계기로 방역 용품 수출이 늘어나고 있는 마스크와 진단키트 업체가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국내 시장에만 머무르다 최근 수출로 더 큰 시장이 열린 업체들이 시장에서 재평가받고 있다”고 했다.

항공·여행주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가기까지는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지금 항공·여행주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막연한 기대’에 기댄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18년 《투자의 가치》라는 책을 펴냈다. 어떻게 좋은 종목을 찾아 투자해야 하는지 이 대표의 가치투자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그런 그에게 ‘동학개미운동’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그는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똑똑해졌다”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 비중이 옛날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삼성전자 등 우량주로 시작했던 자금이 최근엔 변동성이 큰 테마주로 대거 이동하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결국 주식의 본질은 회사”라며 “적어도 자신이 투자하는 회사가 뭐하는 곳인지는 알고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의 성격이 변해 투자 기간을 짧게 잡을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옛날엔 1~2년짜리 트렌드가 보였고, 잘못 판단해 투자했어도 기다리면 주가가 회복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금은 한 번 회사의 이익이나 업황이 꺾이면 꺾인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현상이 심해졌다”며 “조금 더 과감한 투자 의사결정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르네상스자산운용도 3개월마다 나오는 분기 실적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포트폴리오를 적극 조정하고 있다. 지난 3월 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급락했을 때도 업황이 안 좋아질 종목을 덜어내고, 좋아질 종목에 집중한 게 도움이 됐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