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은행들이 사모펀드 수탁을 거부하고 있다. 운용사들은 멀쩡한 펀드마저 설정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펀드 자산을 ‘금고지기’인 수탁은행(신탁업자)에 맡겨야 펀드를 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으로 수탁은행들의 펀드관리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주로 부동산이나 매출채권 등과 같은 비유동성 자산을 담는 펀드의 수탁을 거부하고 있다. 1조원 넘는 자산을 굴리는 한 대형 운용사의 임원은 “은행들이 비유동성 자산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누가 봐도 펀드 자산에 문제가 없는데도 시간을 끌거나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수탁계약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다른 운용사 임원은 “신생 운용사들의 펀드 수탁은 펀드 자산도 따지지 않고 거부되고 있다”며 “펀드 수익자가 딜에 관련된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에 은행을 설득해달라고 민원을 넣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일부 운용사는 초대형 투자은행(IB)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를 통해 수탁은행에 우회로 접근하고 있다. 증권사를 중간에 끼는 일종의 간접 계약이지만 이마저도 곧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이 수탁을 거부하는 이유는 펀드 관리에 대한 책임이 돌아올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수탁은행은 사모펀드의 재산을 보관하는 ‘금고지기’뿐 아니라 감시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사모펀드에 대해선 이런 감시 역할에 대한 예외조항을 뒀다. 하지만 사모펀드라고 해도 수탁은행의 선관주의 의무 자체가 면제되는 건 아니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옵티머스 사태를 계기로 금융감독원이 수탁 자산을 전수조사하는 점도 부담이다. 수탁은행에도 감시의무를 묻겠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은행으로선 수탁 업무가 큰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모펀드 수탁 수수료율은 2bp(0.02%) 수준에 불과하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수탁은행 구하기가 어려워져 수수료가 4~7bp로 올랐지만 리스크를 지느니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이 은행들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운용사들은 금융투자협회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당국에 촉구하길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금투협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투협 관계자는 “대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해결책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수탁 수수료를 올려준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고 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라임에 이어 옵티머스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는데 정상 펀드도 설정이 안되면 대부분 존폐 위기를 겪을 것”이라며 “금융위가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