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진 씨를 비롯한 전 옵티머스자산운용 임직원들은 김재현 대표가 주도한 옵티머스 펀드 사기 혐의 관련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2018년 2월 13일 금융감독원 금융투자준법검사국 자산운용준법검사2팀에 제출했다.                   /옵티머스운용 전 직원 제공
이혁진 씨를 비롯한 전 옵티머스자산운용 임직원들은 김재현 대표가 주도한 옵티머스 펀드 사기 혐의 관련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2018년 2월 13일 금융감독원 금융투자준법검사국 자산운용준법검사2팀에 제출했다. /옵티머스운용 전 직원 제공
약 2년6개월 전부터 옵티머스 펀드 사기사건의 징후가 있었지만 관련 당국이 이를 묵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옵티머스자산운용 전직 임직원들이 2017년부터 수차례 고소와 진정을 제기했지만 당국이 사건을 덮어 투자자들에게 5000억원대 피해를 입히는 대형 사건으로 번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혁진 전 옵티머스운용 대표와 직원들은 2017년 말 펀드 관련 사기 혐의를 상세히 기술해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실에 제보했다. 그해 12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김재현 옵티머스운용 대표와 양호 전 나라은행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도 했다.

김 대표와의 분쟁 끝에 회사를 나온 이 전 대표 등은 고소장에 김 대표 등이 어떤 방식으로 펀드 사기를 벌이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담았다. 옵티머스운용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의 자금으로 우량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를 설정한 뒤 불법적으로 부실한 사모사채로 자금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 등을 적시했다. 옵티머스운용이 이후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5000억원대 자금을 모아 부실 사모사채를 인수해 돈을 빼돌린 사기와 똑같은 수법이다. 고소장과 진정서를 통해 이 전 대표는 옵티머스운용 자체 자금으로 김 대표가 가지고 있던 코스닥 상장사인 코디 전환사채(CB), 부동산 개발업체인 더블라썸 사모사채를 편법으로 인수한 사실도 알렸다.

검찰은 고소를 무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서울 강남경찰서에 이첩했지만 이듬해 4월 사건을 ‘각하’(수사 요건 미충족)시켜 버렸다. 각하는 피의자가 사망하거나 고소 자체가 부실해 수사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을 때 내놓는 결론이다. 전문적으로 이런 펀드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금감원도 검경의 각하 처분을 이유로 옵티머스 사기 혐의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 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옵티머스 펀드의 불법 운용 제보도 묵살했다.

옵티머스 '비호세력' 있나
고발·진정서 내도 檢·警·금감원 꿈쩍 안해

옵티머스 펀드가 대형사기 사건이 될 징후는 2017년부터 나타났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전 대표와 임직원이 검찰과 금융당국에 고소와 진정 등을 통해 수차례 사기 가능성이 높다고 알렸다. 하지만 검찰과 금융감독원 등은 이를 묵살했고, 결국 5000억원대 사기 사건이 됐다.

이혁진 전 대표 등의 진정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원래 주인은 이혁진 씨였다. 2009년 옵티머스 전신인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을 설립한 그는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일을 겪었다. 2017년 7월 김재현 대표(구속)에게 회사를 넘기고 떠났지만 매각 잔금을 받지 못하자 김 대표 측과 적대적 관계가 됐다. 그는 그해 10월 미국으로 출국한 뒤 옵티머스운용에서 근무하던 직원과 함께 김 대표 측의 비리를 캤다.

기존 직원들은 김 대표 밑에서 몇 개월 같이 일하면서 옵티머스 펀드의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우량 채권에 투자하는 레포펀드를 설정한 뒤 부실 비상장 기업의 사모사채에 투자하는 수법이 대표적이었다. 펀드 자금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이 관리하던 정부 기금에서 끌어왔다. 750억원에 이르는 공공기관 기금을 우량 채권이 아니라 성지건설 무자본 인수합병(M&A) 등에 썼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속여 5000억원대 펀드 자금을 유용한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은 이런 수법의 판박이다. 또 김 대표가 옵티머스운용 자체 자금으로 자신이 보유하던 코스닥 상장사인 코디 전환사채(CB), 장외 부동산 개발 업체인 더블라썸 사모사채를 편법으로 인수한 배임 혐의도 적발했다.
[단독] 檢·금감원 '옵티머스 사기제보' 수차례 뭉갰다

경영권 분쟁이 시발점

미국으로 건너간 이 전 대표는 옵티머스운용에서 나온 직원들과 함께 김 대표 측을 전방위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불법 행위를 알려 김 대표와 양호 전 나라은행장의 대주주 변경 승인을 막는 게 목적이었다. 회사를 자기 소유로 묶어놓기 위한 전략이었다. 옵티머스운용은 공·사모 운용사여서 금융당국의 대주주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전 대표 등은 2017년 11월 금감원 자산운용감독실 자산운용인허가팀에 진정서를 넣었다. 펀드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만큼 대주주 승인을 해주면 안 된다는 게 골자였다. 12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김 대표와 양 전 나라은행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 위반 혐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곧바로 강남경찰서 경제팀에 이첩했다. 이 전 대표는 이 같은 고소 사실을 바탕으로 2018년 2월 13일 금감원 금융투자준법검사국 자산운용검사2팀에 진정서를 추가로 넣고, 민원까지 제기했다. 자산운용검사팀은 이런 펀드 불법 운용을 전문적으로 검사하는 곳이다.

당국의 철저한 묵살

하지만 소용없었다. 금감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민원을 제기한 옵티머스 전 직원 김모씨는 “사기 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제출하고 직접 가 설명하겠다고 했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중앙지검과 강남경찰서는 수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 2018년 4월 17일 ‘각하’(수사 요건 미충족)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사건을 맡았던 이승용 변호사(법률사무소 호평)는 “공동 고소인이었던 옵티머스 전 직원 이모씨가 김 대표의 가압류 등 압박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고소를 취하한 당일에 각하 결정이 났다”며 “친고죄도 아니어서 고소 취하가 각하 사유가 아니고, 사기 혐의를 다퉈볼 여지가 충분했음에도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 같은 검·경의 각하 결정을 바탕으로 옵티머스 사기 혐의를 확인하지도 않았고, 그해 7월 대주주 변경을 승인했다. 금감원은 2017년 옵티머스운용에 현장 검사를 나갔는데 2018년 말 이 전 대표의 비위 혐의에 대해서만 기관경고 및 과태료 1000만원의 제재 조치를 했다.

중앙지검은 과기정통부의 불법기금 운용 관련 감사를 받았던 전파진흥원의 수사 의뢰를 2018년 10월 다시 받았지만 이듬해 5월 불기소처분했다.

검찰과 경찰, 금감원 모두 펀드 사기를 조기에 차단할 기회를 놓쳤다. 일각에선 옵티머스운용을 비호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옵티머스운용은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 김진홍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 등을 자문단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