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한 곳과 아닌 곳….’ 최근 10년간 국내 5대 그룹은 이렇게 나뉘었다. 조선·철강·금융 등 그룹을 떠받쳤던 전통 산업의 쇠락을 반도체·바이오 등 신산업으로 채워낸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의 시가총액은 극명히 차이를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산업지형이 변화하고 있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新산업서 '희비' 갈린 5대그룹 시총

희비 엇갈린 5대 그룹

9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국내 5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10년 전인 2010년 말 509조4074억원이던 것이 현재(7월 8일 기준)는 791조5799억원으로 불어났다. 52개였던 5대 그룹 상장사 수도 70개로 늘었다. 생존을 위해 끝없는 변화를 꾀한 결과다.

그룹사별로 시총 변화를 살펴보니 희비가 갈렸다. 삼성그룹은 224조원에서 473조원으로 시총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 사이 삼성SDS, 삼성물산이 새롭게 상장했고, 삼상바이오로직스는 상장 이후 3년여 만에 시총 규모가 50조원대로 커졌다.

10년 전 현대차그룹의 절반 수준이던 SK그룹 시총은 135%나 확대됐다. SK하이닉스 시총이 이 기간 14조원에서 61조원으로 증가한 데다, 최근 상장한 SK바이오팜 시총이 단숨에 17조원까지 치솟은 덕분이다. 반면 111조원에 달했던 현대차그룹 시총은 69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룹의 핵심 전략이던 ‘수직계열화’가 자동차 판매가 부진하자 부메랑이 돼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는 물론 현대제철까지 타격을 입힌 탓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롯데그룹도 시총이 2010년 대비 43% 줄었다.

“혁신이 향후 10년도 가른다”

결국 새로운 성장동력이 운명을 갈랐다. 시총이 꾸준히 증가한 삼성그룹도 속사정은 순탄치 않았다. 삼성중공업(10조원→4조원), 삼성엔지니어링(8조원→2조원) 등 조선·플랜트 관련 기업들은 몸집이 급격히 왜소해졌다. 해당 산업이 전성기를 지나 수년째 지지부진한 탓이다. 금융 계열사인 삼성화재(11조원→9조원), 삼성증권(6조원→2조원) 등도 맥을 못 추고 있다. 반도체·바이오 등 새로운 분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2010년 이후 수년간 7조원 수준에 머물던 삼성SDI는 27조원까지 시총이 늘었다. SK그룹도 삼성과 마찬가지로 반도체·바이오가 그룹을 이끌었다. 물론 지난 10년간 시총이 3분의 1토막 난 SK네트웍스와 절반으로 줄어든 SK디스커버리의 부진도 있었다. 하지만 SK바이오팜이 SK텔레콤을 단숨에 뛰어넘을 만큼 그룹 전체로 보면 확실한 선순환 구조가 갖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 전체 시총에 급격한 변화는 없었지만 LG그룹 역시 LG디스플레이(14조원→4조원), LG전자(17조원→11조원)와 LG화학(26조원→36조원), LG생활건강(6조원→21조원)의 행보가 엇갈렸다.

현대차는 전체 상장사가 모두 시총이 줄었다. 현대차(38조원→21조원)를 비롯해 기아차(20조원→13조원), 현대모비스(27조원→19조원), 현대제철(11조원→3조원), 현대건설(8조원→4조원) 등이 최대 70%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두 달 남짓 만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연쇄 배터리 회동을 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이동수단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만큼 전기차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드에 이어 코로나19 사태까지 악재가 겹치며 위기에 놓인 롯데그룹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14조원에 달하던 롯데쇼핑 시총은 10년 새 2조원으로 급감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혁신과 성장에 대한 시장의 가치 평가는 냉정하지만 정확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국내 기업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5대 그룹의 10년 뒤 모습도 혁신의 결과에 달려 있다”고 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