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2008년 금융위기 후 급성장했다. 반도체 휴대폰 TV 등 대부분 사업부문이 세계 1위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 결과는 삼성과 경쟁했던 일본 업체들의 후퇴로 이어졌다. 줄줄이 사업을 접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삼성의 기업가치는 수직상승했다.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에 기업의 순위가 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주가는 이를 먼저 반영한다.

2차전지 종목들이 새로운 꿈의 주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가올 전기차 시대에 대한 기대감은 LG화학과 삼성SDI의 주가를 밀어올리는 원동력이다. 두 회사와 SK이노베이션까지 합쳐 ‘2차전지 삼총사’로 불린다. 이들의 주가 상승 이면에는 또 다른 의미가 깔려 있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국내 4대 기업이 모두 자동차산업의 심장부로 진출한다는 점이다. 또 ‘엔진의 시대’에는 일본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저물어가는 '엔진의 시대'…LG화학·삼성SDI는 달아오른다

4대 그룹이 자동차의 심장부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한국이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는 주가에 나타난다. 2차전지 시장의 주도주 LG화학 주가는 지난 3월 19일 23만원까지 추락했다가 최근 50만원 선을 회복했다. 18만원대까지 떨어졌던 삼성SDI는 40만원 선을 넘보고 있다. ‘주가의 회복탄력성’에는 기대감이 배어 있다. 키워드는 ‘역전’이다.

2000년대 초반 2차전지 시장은 일본이 94%를 차지했다. 이후 LG화학과 삼성SDI가 추격을 시작했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며 판은 뒤집어졌다. LG화학은 올 1~5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8%였던 점유율이 올해는 24.2%로 뛰었다. 경쟁사인 중국의 CATL(22.3%), 일본의 파나소닉(21.4%)을 제쳤다. 같은 기간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도 각각 4위, 7위에 올라섰다. 한국이 국가별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지난 20년이 일본의 무대였다면 앞으로의 20년은 한국의 무대라는 기대가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밸류체인 강점인 韓

이런 성장을 가능케 한 것은 한국식 집중 투자와 협력 업체의 존재다. 삼성SDI가 2017년부터 올 2분기까지 쏟아부은 연구개발비는 2조원이 넘는다. LG화학은 2차전지 부문 인력을 1년여간 1000명 이상 늘렸다. 대규모 인적자원 투자였다.

이와 함께 밸류체인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차전지 4대 핵심소재부터 주변 부품까지 모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 포진해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양극재 분야 세계 2위다. 음극재 분야에선 포스코케미칼과 대주전자재료 등이 기술력으로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음극재의 핵심으로 꼽히는 동박(일렉포일) 부문에서도 일진머티리얼즈와 SKC가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이들 기업의 주가도 최근 급등하며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2차전지 업체와 협력사 업체 시가총액 합계는 100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2차전지 관련 중소기업은 탄탄한 기술력과 안정적인 공급 능력을 바탕으로 한국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은 어디쯤 있나

2차전지 시장을 둘러싼 한·중·일 3국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일본은 한국에 추격당하자 장점인 기술 개발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일본 도요타는 파나소닉 등과 손잡고 2022년까지 전고체 배터리 기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가격과 충전시간이 3분의 1에 불과한 차세대 배터리다. 삼성SDI와 개발 경쟁을 벌이는 분야로 4대 핵심소재 간 안정적인 조합, 양산을 위한 기술 확보 등이 관건이다.

중국은 CATL과 BYD가 대표 업체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우던 CATL은 최근 수년간 매출의 6%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기술 격차 줄이기에 나섰다. 최근 BMW가 CATL 배터리를 채택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BYD는 도요타와 합작 연구개발 법인을 설립하며 한국 기업 견제에 나섰다.

한국도 협력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지난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어 6월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만난 것이 이를 상징한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