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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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모 증권사가 내놓은 한 보고서를 보면서 눈을 의심했다. 이 증권사 모 연구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되던 지난 3월 중순 정부가 공매도 금지조치를 취한 것이 주가지수를 약 9%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공매도 금지는 최근 코스피의 빠른 반등 동력 중 하나로 거론된다"며 "만약 같은 기간 공매도가 허용됐다면 현재 코스피 가격 수준은 2000선에 그쳤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얼핏 보면 "공매도는 주가를 떨어뜨리는 주범인데 정부가 그걸 막아서 주가 하락 폭도 제한됐고 최근 주가가 반등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는 상식(?) 을 말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다. 만약 보통의 개미투자자가 이런 말을 했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비교적 소액으로 투자를 하는 개인투자자들은 자신의 주식 가격을 '한 틱' 이라도 끌어내리는 매도 세력(?)에 대해서는, 그것이 누구이든 늘 분노를 머금고 있고 이런 나쁘고 사악한 존재가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주식 투자를 좀 해 본 사람은 소위 돈에 눈이 멀면 사람이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금세 알게 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 스스로의 투자 내역을 들여다보면 팔아야 할 때 사고, 사야 할 때 판 적이 한두번이 아닐 것이다. 평균적인 주식 투자자 대다수가 돈을 잃는 이유다. 정상적인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무장한 보통 사람들은 이른바 '욕심과 공포' 때문에 돈이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면 이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물론 평소에 각종 매매 기법이라는 것을 익히고 자기 나름대로의 매매 원칙도 세우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는 투자자들이 많을 것이다. 심지어 컴퓨터 옆에 칼을 갖다 놓고 매매하는 전업 개인투자자를 본 적도 있다. 평소 원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돈을 버는 건 시간문제인데 막상 장이 열리고 컴퓨터 화면 앞에 앉으면 또 다시 원칙을 어기고 매매에 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또 다시 '그런 짓'을 할 경우 마우스로 향하는 자신의 손을 칼로 베어 버리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한 것이다.

그 투자자가 그 후로 돈을 벌어 성공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는 얼마나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 투자가 어려운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사례를 보면, 돈을 잃은 개인투자자들이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시장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알게된다. 따라서 이들이 공매도라는 '거대 세력의 거대한 음모' 에 대해 공분을 느끼고 세상에서 마땅히 없어져야 할 악(惡)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위 나름 전문가 집단이라고 하는 증권사에서 이런 리포트를 그 소속 연구원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이고 더 웃긴 건 증권사가 그 내용을 별 생각 없이 언론에 공개했다는 점이다. 공매도가 주가를 끌어내리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국내외에서 너무나도 많은 연구와 논란이 오랜 기간 있어왔고 "전혀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대체적인 결론이다.
증권사나 금융회사에서 조금이라도 공매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다 아는 얘기일 것이다. 만약 공매도가 그렇게 나쁘고 사악한 존재라면 아마 우리보다 훨씬 앞서 이 제도를 만들고 시행해 온 금융선진국들이 죄다 공매도를 이미 없앴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금융선진국들은 공매도를 없애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주가가 급락하기만 하면 공매도 금지를 남발하지도 않는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대표적 금융선진국들은 공매도 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3월 중순, 유럽 몇몇 국가들이 한국처럼 공매도 금지조치를 취했지만 당시 영국과 독일은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야기한다는 근거가 없다"며 금지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공매도를 금지했던 나라들도 최근 대부분 금지조치를 해제했다.

공매도 금지가 주가하락을 막고 주가상승에 도움이 되었는지 여부는 당장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3월 중순경부터 최근까지 주요국의 주가지수 등락율만 비교해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한국이 공매도를 금지한 3월16일부터 50일간 미국의 S&P지수는 27.6%, 일본 닛케이225는 28.7% 올랐다. 두 나라 모두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같은 기간 18.4% 올랐다.

유럽국 중 공매도를 금지했다가 최근 재개한 국가들의 경우를 보면 더 재미있다. 벨기에 주가지수는 공매도가 재개된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7일까지 17.35% 상승했다. 금지 기간(3월16일~5월15일) 상승폭은 7,30%에 그쳤다. 프랑스도 공매도 금지 기간에 3.87% 오른 반면, 허용한 뒤 16.79% 올랐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이런 분명한 숫자가 있는데도 모 증권사는 "공매도 금지가 코스피의 빠른 반등 동력중 하나"라는 리포트를 내놨다. 왜 그랬을까. 이 증권사의 시장을 보는 눈이 평범한 개인투자자 수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에서였을까. 최근 금융당국와 증권가에서는 오는 9월 중순까지로 되어 있는 공매도 금지기간을 더 연장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아예 공매도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또 다른 편에서는 주가를 떨어뜨린는다는 근거가 없는 만큼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까지 여러 주장이 오가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8월 두 차례 이상 공청회를 열어 공매도 금지 효과 및 공매도 제도 보완 등을 두고 각계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한다.

서울대 경영학과의 이관휘 교수는 최근 한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공매도 금지 논란을 횡단보도 사고에 비유했다. 교통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다가 사람들이 횡단보도 근처에서 다치거나 죽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경우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횡단보도 근처에 과속방지턱을 만들자고 하는데 또 다른 쪽에서는 이참에 아예 횡단보도 자체를 없애자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횡단보도가 없어지면 횡단보도 주변의 교통사고도 사라진다는 게 이들의 논리라는 것이다.

자!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사고가 잦다고 횡단보도를 없애자고 주장하고 싶은가? 아니면 과속방지턱을 만들자는 의견을 낼 것인가. 누군가 "스쿨 존에서 교통사고를 없애는 최선의 방법은 스쿨 존을 없애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여기에 동의하겠나.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