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국내 채권 보유액이 지난달 말 140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 들어 넉 달 동안 17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지난해 전체 증가액(9조900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인이 다른 신흥국에선 채권을 대거 팔아치우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탄탄한 신용등급과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 덕분에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 더 돋보이는 ‘안전자산’ 대우를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안전 자산' 대접받는 한국 채권…외국인 보유액 140조 사상최대
한국 채권 쓸어담는 외국인

11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4월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에 따르면 외국인의 국내 상장채권 보유액은 지난달 140조4940억원으로 처음 140조원을 넘었다. 지난해 말(123조6510억원)에서 16조8430억원 늘었다. 상장채권이란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는 채권을 말한다. 국채와 통화안정증권 등 대부분 공모 채권이 상장돼 있다. 사모 채권도 상장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13년 6월 처음 100조원을 돌파한 외국인 상장채권 보유액은 한동안 100조원 내외를 맴돌다 지난해 6월 120조원을 넘었다. 이후 주춤하던 보유액은 올해 3월 130조원, 4월 140조원을 돌파하며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증시가 흔들릴 때 더 많이 샀다. 외국인의 국내 상장채권 순매수액은 지난 3월 7조3990억원, 4월엔 9조3210억원에 달했다. 올 들어 26조4100억원 순매수한 것으로, 만기 상환액을 뺀 순투자액은 16조1570억원이었다. 반면 국내 상장주식은 3월 13조4500억원, 4월 5조3930억원어치 순매도했다. 국내 주식을 팔면서도 채권은 사들인 것이다.

다른 신흥국이나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봐도 ‘외국인의 한국 채권 사랑’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올 들어 4월까지 외국인이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멕시코,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6개 신흥국에서 410억달러어치 채권을 파는 동안 한국에선 220억달러어치(약 27조원)를 순매수했다”며 집중 조명했다.

“안전자산이면서 금리 높아”

국내 채권의 매력은 신용등급이 높아 돈을 떼일 염려가 거의 없는 데도 선진국 국채보다 높은 금리를 지급한다는 데 있다.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평가 기준 AA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과 같다.

윤여삼 메리츠종금 연구원은 “한국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46%, 정부보증부채를 합쳐도 70%대밖에 안 된다”며 “경상수지 흑자는 GDP의 3% 내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돼 최근 안전 자산 지위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채권을 매수하는 외국인은 주로 국부펀드나 중앙은행 등 공적 자금으로, 안전성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 앙드레 드 실바 HSBC홀딩스 신흥국 채권 리서치 부문장도 블룸버그를 통해 “높은 신용등급과 선진시장에 맞먹는 금융시장 개방도로 인해 한국 채권이 안전자산처럼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금리도 높은 편이다. 한국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현재 1.43%대로 미국(0.69%), 일본(0.00%), 독일(-0.53%) 등 선진국은 물론 태국(1.14%), 싱가포르(0.90%), 대만(0.48%) 등 주요 신흥국보다 높다. 게다가 외국인이 달러를 원화로 바꿔 투자할 때 환헤지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어 달러 수익률은 더 올라간다. 외국인이 한국 3년 만기 국고채에 투자할 때 0.91%인 금리에 약 0.9%인 환헤지 프미리엄을 얹어 약 1.8%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매수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저금리가 심화하고 금융시장 불안이 재발할 수 있어 한국 채권만큼 안정적인 투자 대상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윤 연구원은 “대규모 추가경정예산과 그에 따른 적자 국채 발행 부담으로 국내 투자자는 채권 투자를 머뭇거리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에는 여전히 투자 매력이 높다”며 “당분간 정부 부채 증가로 외국인 채권 자금 이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