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자산 급락→전액손실 우려에
美처럼 증권사에 청산 권한 부여
도입 땐 투자자 손실 축소 가능
기초자산 가격 급락으로 손실 우려가 커진 상장지수증권(ETN)을 증권사가 자진 청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원유 ETN 투자의 위험성이 부각된 데 따른 조치다. 최근 미국에서 원유 ETN이 조기에 자진 청산돼 투자자 손실을 줄였는데 이런 시스템을 국내에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단독] 거래소, 원유 ETN '자진 청산制' 도입 추진

‘ETN 자진 청산’ 도입 추진

한국거래소 고위관계자는 26일 “기초자산 가격 하락으로 투자자 손실이 우려되는 ETN을 증권사가 자진 청산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도 처음에는 자진 청산 제도가 없었지만 2000년대 초반 괴리율 폭등 문제를 겪은 뒤 도입했다”며 “한국도 이와 비슷하게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TN이 자진 청산되면 투자자들은 해당 시점의 기초자산 가격으로 손실이 확정된다. 기초자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국면에선 투자자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거래소가 이 같은 제도 개선을 검토하는 것은 지난 20일 WTI 선물가격이 마이너스로 추락한 것과 비슷한 사태가 앞으로도 재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개인투자자가 레버리지 WTI 선물 ETN을 싹쓸이하면서 이들 상품의 괴리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도 자진 청산 제도 도입을 검토하는 이유다.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ETN 시장을 처음 개설한 2014년 당시 자진 청산 제도 도입이 논의됐지만 ‘증권사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반대가 있어 불발로 그쳤다”며 “금융당국과 논의해 이런 우려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괴리율 진정 대책 집중 시행

최근 지나치게 높은 괴리율로 문제가 되고 있는 레버리지 WTI 선물 ETN 4종이 당장 청산되는 것은 아니다. 자진 청산 제도를 도입하려면 관련 규정을 수정해야 하고, 금융당국과 논의하는 절차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를 거치는 사이 ETN 4종의 괴리율은 진정될 수도 있다. 증권사들이 ETN 추가 상장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신한금융투자는 그동안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을 1조9600억원어치(액면가 기준) 시장에 풀었는데 거래 재개 시 최대 9700억원어치를 추가로 푼다. NH투자증권은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을 600억원어치 매도한 상태인데 거래 재개 뒤 200억원어치를 더 내놓는다.

미래에셋대우는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 2000억원어치를 시장에 푼 상태며 잔여 보유량은 없다. 그러나 다음달 15일부터 기존 물량보다 많은 3000억원어치를 추가 상장할 수 있게 된다. 삼성증권은 지금까지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을 1조500억원어치 장내 매도했고 LP 잔여 보유량이 1조원어치 있다. 다만 삼성증권 측은 추가 매도 계획을 잡지 않았다.

한편 거래소는 괴리율 폭등으로 거래가 정지됐던 원유 선물 ETN 거래를 27일 재개한다. 하지만 이날 괴리율이 30% 미만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그다음 날부터 3거래일 동안 다시 매매를 정지한다. 그다음 날 거래를 속개하지만 그래도 괴리율이 내려오지 않으면 다시 3거래일간 매매가 정지된다. 괴리율이 30% 미만으로 내려올 때까지 이를 반복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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