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JP모간과 므누신, 시장이 모르는 뭔가를 아나?"

15일(현지시간)은 월가 투자자들에게 힘든 하루였습니다.
투자자들은 어제 시작된 1분기 어닝시즌에서 경기 침체의 피냄새를 맡았습니다. 이날은 3월 미 경제의 현실을 알려주는 하드데이터(실물 지표)들을 만났습니다.

지난 3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8.7% 감소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뒤 가장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전 최대 낙폭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1월의 3.9% 감소였습니다.
자동차, 의류, 레스토랑 소비는 20~50%까지 줄어 모두 역대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습니다. '사재기'로 인한 식료품 지출의 급증으로 전체 지표가 10%대로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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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3월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5.4%(계절 조정치) 감소해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 1월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오후에 나온 미 중앙은행(Fed)의 베이지북은 “미 전역에서 경제가 갑작스럽고 가파르게 위축됐다”(contracted sharply and abruptly)고 진단했습니다. 모든 지역에서 경제 전망이 매우 불확실하며, 대부분 악화가 예상된다고 관측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3월 실물지표를 만나 이제 리얼리티 체크(현실 인식)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경제 봉쇄가 3월 중순 시작됐기 때문에 3월 지표는 그 영향을 절반 정도 반영한 셈"이라며 "4월 지표는 무시무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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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끔찍한 3월 지표는 훨씬 더 나쁜 4월의 예고편‘ (Awful March Was a Preview of Far Worse April for U.S. Economy)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역사적으로 나쁜 3월 소매판매와 산업생산은 4월에 더 악화됨을 시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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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새벽부터 배럴당 19달러대로 무너졌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산유국들의 970만배럴 감산은 소비 감소폭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며, 이대로라면 올해 중반께 세계의 원유저장고가 가득찰 것이라고 예상한 탓입니다.

이어 나온 미 에너지정보청(EIA)의 지난주 통계에선 원유재고가 한 주만에 1925만배럴이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IEA의 주장을 뒷받침한 겁니다.
이에 따라 미 행정부가 셰일업자들에게 셰일오일 채굴을 중단하는 댓가로 돈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블룸버그 뉴스까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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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뉴욕 증시는 하락폭 1~2%대에서 버텼습니다. 다음달 1일이면 경제를 재개한다는 희망을 품은 탓입니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오후 12시께 "코로나바이러스 3일 평균 신규입원자가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밝힐 때는 다우지수가 수십 포인트 반등했습니다.

이 시간 뉴욕 채권시장의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많은 트레이더들이 단말기만 쳐다본 채 망연자실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미국 최대 은행 JP모간 탓이었습니다.

어제 1분기 실적을 발표한 JP모간은 이날 아침 일찍 금융채 발행에 나섰습니다. 실적 발표 전 2주간의 블랙아웃(금지 기간)이 풀린 직후였습니다.

어제까지 신용등급 ‘더블A’인 JP모간의 채권은 유통시장에서 국채와의 스프레드가 150~160bp(1bp=0.01%포인트) 수준에 거래됐습니다.

하지만 이날 JP모간은 최초 제시금리(Initial guidence)로 205bp를 불렀습니다. 통상 최초 제시금리는 통상 유통가보다 20bp 정도 높은 게 관행입니다. 높은 금리를 제시해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경쟁을 유도해 낮은 금리에 발행하는 식이죠. 그런데 40~50bp나 높게 제시하자 시장에선 불안감이 감지됐습니다.
한 채권 트레이더는 "JP모간이 왜 이리 급히 자금을 조달하려하는 지 궁금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오전 11시반. JP모간이 내놓은 5년, 10년, 20년, 30년물 100억달러 어치 금융채는 스프레드가 175~190bp에서 낙찰됐습니다. 어제 유통가보다 25~30bp 높은 금리입니다.
게다가 10년~30년물까지 금리가 기간프리미엄 없이 거의 평평한 수준에서 발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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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간이 높은 금리를 주고 돈을 급히 조달한 셈입니다. 금리가 높아진다는 건 채권 값이 낮아진다는 얘깁니다.
JP모간 채권을 보유하던 트레이더들은 '멘붕'에 빠졌습니다. 새로 발행된 채권이 낮은 가격에 발행되면서 자신의 채권 값도 하루만에 2% 이상 떨어진 겁니다. 한 채권 트레이더는 "어제까지 100원하던 채권 값이 순식간에 97원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여파로 이후 크레딧 시장에서는 사실상 거래가 중단됐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월가 최대 금융사인 JP모간이 급히 돈을 땡긴 건 '뭔가 시장이 모르는 걸 알고 있기 때문 아니냐', '뭔가 터져 크레딧 시장이 망가지기 전에 돈을 조달하려는 것이 아니냐'라는 설들이 나돌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이상했던 건 금리뿐 아닙니다. 통상 금융사들은 5년물을 발행한 뒤 다음달 10년물, 그 다음달 20년물 등 기간물을 시차를 두고 나눠 발행합니다.
하지만 JP모간은 이런 관행도 무시하고 한꺼번에 100억달러를 조달해갔습니다. 자주 채권을 찍지 않는 제조업체들이 하던 식이었습니다.

어제 JP모간은 1분기 실적에서 68억달러를 대손충당금으로 쌓았습니다.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는 “1분기 기본 결과는 매우 좋았지만 상당히 심각한 경기 침체 가능성을 감안할 때 68억달러를 대손충당금으로 마련해놓아야했다”고 설명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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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채권시장에서는 또 다른 소문도 나돌았습니다.
전날 미 재무부와 델타, 유나이티드 등 10개 항공사는 250억달러 지원 조건에 합의했습니다. 미 의회가 승인한 구제패키지에 있던 돈입니다.

이 패키지에서는 원래 항공사 대상으로 250억달러를 보조금(무상)으로 주고, 또 다른 250억달러는 대출해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지난주 갑자기 무상 250억달러의 30%를 10년 저리 대출로 바꿨습니다. 이에 따라 협상기간이 일주일 이상 길어졌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므누신 장관이 왜 의회가 그냥 주기로 한 돈의 조건을 굳이 바꾸면서 돈을 아끼기로 했는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다"며 "므누신 장관도 ‘시장이 모르는 뭔가를 아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JC페니가 파산신청을 검토중이란 뉴스가 나왔습니다. 대기업들 파산이 예상되면서 지원예산을 미리 마련하려는 것이란 관측이 나왔습니다. 4월부터 곳곳에서 렌트(월세)가 연체되면서 위기에 처한 상업용 모기지(CMBS) 구제에 투입하려는 것이란 예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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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기업 실적과 실물지표가 나오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조금 바뀌고 있습니다. 안정되던 달러화는 이날 다시 소폭 상승했고,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도 다시 40대로 올라갔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이런 흉흉한 소문은 다음달 경제활동이 재개돼 경기가 반등한다면 금세 해결될 것”이라면서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런 불안감은 Fed가 안정시켜놓은 시장에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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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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