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증권사가 수조원어치에 달하는 상장지수증권(ETN) 추가 발행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TN 추가 발행은 일반 종목 현물시장의 신주 발행과 비슷하다. 물량이 늘어나 최근 개인투자자가 공격적으로 순매수한 원유선물 ETN 가격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원유선물 ETN '추가 상장 물량' 쏟아진다
쏟아지는 원유선물 ETN 물량

14일 증권가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최근 금융감독원에 “ETN 발행 한도를 2조원(액면가 기준) 더 늘리겠다”는 내용의 신고서를 제출했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ETN 전체 발행 한도만 규제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ETN을 발행할지는 증권사가 결정한다. 이 신고서는 이달 22일 효력이 발생한다.

삼성증권은 추가 발행 한도의 상당 부분을 원유선물 ETN에 할당할 계획이다.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목적이 ‘원유선물 ETN 유동성 공급’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 풀려 있는 삼성증권의 원유선물 ETN은 액면가로 1조500억원어치(주당 1만원)다. 추가 물량이 모두 원유선물 ETN에 할당되면 전체 발행량이 세 배 가까이 늘어난다.

신한금융투자도 “ETN 발행 한도를 4조원 더 늘리겠다”고 금감원에 신고했다. 이 증권사가 발행한 원유선물 ETN은 현재 9300억원어치가 있는데 최대 네 배가 넘는 물량을 신규 발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효력 발생 예정일은 이달 20일이다.

물론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가 이 물량을 모두 한꺼번에 상장하는 건 아니다. 시장 상황을 보며 괴리율(지표가치와 시장가치 간 격차)을 줄이는 데 필요한 만큼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최근 괴리율이 높아 추가 상장 물량이 조원 단위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NH투자증권도 오는 17일 원유선물 ETN을 200억원어치 추가 발행한다. 기존 발행량 200억원에서 배로 늘린다. 물량을 푸는 시점은 시장 상황에 따라 하루에 다 할 수도, 며칠 걸릴 수도 있다. 발행 한도 여분이 있어 금융당국에 한도 상향 조정 신고는 하지 않았다.

국제 유가 상승 전망도 먹구름

증권사가 원유선물 ETN을 추가 발행하는 이유는 최근 이들 상품의 괴리율이 크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평소 증권사는 유동성공급자(LP) 역할을 한다. 원유선물 1000원어치에 해당하는 ETN이 이 가격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으면 공급량을 늘려 주가를 떨어뜨리고, 싸게 거래되고 있으면 매수해 주가를 올림으로써 시장 가격이 1000원 인근에서 형성되도록 한다.

그러나 최근 개인이 원유선물 ETN을 싹쓸이하면서 LP의 유동성 공급 물량이 바닥났다. LP가 제 역할을 못하는 사이 개인끼리 물량을 주고받으며 주가를 올렸고 이에 따라 괴리율이 크게 높아졌다. 유가 폭락에도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의 괴리율은 이날 43.58%에 달했다. 원유선물 1만원어치에 해당하는 ETN이 1만4358원에 거래됐다는 의미다.

증권사가 원유선물 ETN을 추가 발행해 유동성 공급 기능이 회복되면 주가가 떨어지면서 괴리율이 낮아진다. 이들 상품을 쓸어담은 개인이 손실을 피하는 방법은 그 전에 국제 유가가 크게 오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녹록지 않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非)회원 산유국이 모인 ‘OPEC+’가 원유 감산에 합의했지만, 물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요 감소량에 턱없이 못 미친다.

한편 한국거래소는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H), QV 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H) 등 3개 종목의 거래를 16일 하루 동안 정지한다. 최근 “5거래일 연속으로 괴리율이 30%를 넘은 종목은 일시적으로 매매를 정지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매매가 재개되지만 이날도 괴리율이 30%를 넘으면 거래가 무기한 정지될 수 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