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들 자금이 국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 채권 등 안전자산에 머무르면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크게 개선된 데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파격적인 금리 인하 등으로 원화 채권 매력이 높아진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실물경제 침체가 금융 부문으로 전이되면서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자본 유출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주식은 팔고 채권은 사는 외국인
한국 주식 판 외국인, 국채는 3兆 샀다
1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1조9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9거래일 연속 ‘팔자’세다. 글로벌 증시 하락세가 본격화된 이달 들어 지난 4일(1533억원 순매수)을 제외하고 보름 동안 대규모 주식 처분에 나섰다. 이 기간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내다판 한국 주식만 8조3883억원어치에 달한다. 코스닥시장을 합치면 규모는 8조3946억원으로 늘어난다. 지수나 개별종목 선물시장에서도 각각 7525억원과 2195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채권시장 분위기는 정반대다. 한국이 16일 기준금리를 연 0.75%로 0.5%포인트 인하해 ‘제로 금리’ 시대를 열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원화 채권 매수세는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외국인이 이달 초부터 16일까지 순매수한 국채는 3조1185억원어치에 달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린 16일 하루에만 6146억원어치의 국채를 사들였다.

반면 단기성 채권인 통화안정채권(통안채)이나 신용 리스크가 큰 회사채 등은 매도세가 우세하다. 이달 들어 통안채와 회사채의 순매도 규모는 각각 252억원, 150억원으로 집계됐다. 16일 하루 순매도한 규모만 각각 991억원, 150억원이었다.

한 증권사 채권 펀드매니저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단기채 위주로 매도하는 것”이라며 “회사채는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내리는 등 신용 리스크가 높아진 탓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기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원화 채권이 국내 금융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외환시장도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2.57% 올랐지만(원화가치 절하)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15.83% 급락했다.

“코로나 장기화 땐 원화가치도 급락”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원화 채권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안전자산 역할을 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김진명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원화는 아직 달러나 엔화처럼 기축통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본적으로 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며 “한국 외환보유액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지난 금융위기 때처럼 위험자산 투자 심리가 극도로 위축되는 경우 국내 채권 및 외환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유출에 따른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여부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거시연구실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금융 부문으로 위기가 전이돼 미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을 제외한 신흥국들은 주식 채권 할 것 없이 외국인 투자자 이탈로 통화가치가 급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호기/강영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