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 회사채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우량기업조차 채권 수요예측(사전 청약)에서 미달이 나는 사례가 나오면서 기업 자금 조달이 급격히 경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이 3000억원 규모 후순위채를 발행하기 위해 지난 13일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진행한 수요예측에 2700억원의 매수 주문이 들어오는 데 그쳤다. 하나은행은 추가 모집을 통해 3500억원어치를 발행할 계획이다. 하나은행 후순위채 신용등급은 10개 투자적격등급 중 세 번째인 ‘AA’(안정적)다. 은행 자체 신용도는 최상위인 AAA다.

같은 날 회사채 수요예측을 한 키움캐피탈(신용등급 BBB+)도 투자 수요를 못 채웠다. 매수 주문 규모는 170억원으로 모집액인 500억원에 한참 못 미쳤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대유행(팬데믹) 국면으로 치닫자 투자자들이 상대적 안전자산인 채권마저 매도하는 등 운용전략을 극도로 보수적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내리막을 타던 채권 금리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 직후인 13일 급격히 치솟았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이날 하루에만 0.087%포인트 뛰며 연 1.149%에 마감했다.
코로나 쇼크'에 우량채도 안 팔려…내달 만기채권 5.4兆 상환 '비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공포가 회사채시장까지 덮쳤다. 급격히 얼어붙은 투자심리에 우량 금융사마저 회사채 수요예측(사전 청약)에서 미달이 났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쇼크’가 실물경제에 이어 금융시장에까지 본격화할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당분간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살얼음판이 깔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회사채시장도 코로나發 한파…우량 금융회사마저 청약 미달
우량채 투자심리마저 냉각

연초 뜨거웠던 회사채시장 분위기는 지난달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면서 빠르게 식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 성장세가 크게 둔화할 것이란 우려가 증폭된 탓이다.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지면서 주요 채권 금리가 가파르게 내려갔다.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이 줄을 잇는 상황에 채권 수익률마저 낮아지면서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부담이 커졌다는 평가다.

회사채 투자 수요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은 하나둘 늘고 있다. 한국토지신탁이 2000억원 규모 발행에 나서 165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는 데 그쳤고, 500억원어치 발행을 추진한 에이치케이이노엔은 500억원의 투자 수요를 모으며 모집액을 겨우 채웠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2일 코로나19가 대유행(팬데믹) 국면에 들어섰다고 선언하면서 투자심리는 더 꽁꽁 얼어붙었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WHO 발표 직후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충격이 불가피하다”며 “큰 폭의 실적 악화로 기업들이 더 큰 신용등급 강등 압박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신용평가사가 현재 등급을 매기고 있는 한국 민간기업(금융회사 제외)은 39곳으로 이 중 23%인 9곳이 부정적 전망을 달고 있다.

불안감이 커진 투자자들이 채권마저 내다팔면서 회사채 금리는 크게 치솟았다. 13일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 평균금리는 0.103%포인트 급등한 연 1.810%에 장을 마감했다. 만기가 같은 국고채와의 금리 격차는 0.661%포인트를 기록, 2018년 8월 22일 이후 1년7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시장이 크게 요동치면서 이날 회사채 수요예측을 한 하나은행과 키움캐피탈 모두 모집액을 채우지 못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신용경색 국면이 오면서 극단적인 현금 선호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이 잦아들기 전까진 회사채 투자심리가 살아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태 장기화될까 노심초사

채권시장에선 이제는 우량기업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심리가 증폭되고 있다. 한국토지신탁과 키움캐피탈에 비해 하나은행은 회사채시장에서 우량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나은행의 신용등급은 10개 투자적격등급 중 최상위인 AAA다.

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장기화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달 사업보고서 제출과 정기주주총회를 마무리한 기업들이 다음달부터 줄줄이 자금 조달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아서다. 국내 기업이 오는 2분기 갚아야 할 원화 채권금액은 11조8071억원에 달한다. 이 중 약 45%인 5조3971억원어치 채권이 다음달 만기를 맞는다.

IB업계에선 다음달까지도 투자심리가 회복되지 않으면 채권 발행을 포기하거나 발행 일정을 미루는 기업이 속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채권발행시장에선 지난달부터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대한항공 등이 잇달아 자금 조달 일정을 연기했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담당 임원은 “여러 기업이 채권 발행 준비를 마치고 시장 상황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오랫동안 투자심리가 살아나지 못하면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을 빚는 기업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