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증시는 ‘공포’로 가득했다. 코스피지수는 열흘 만에 2000선을 내준 뒤 4% 넘게 속절없이 밀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과 유럽으로 퍼진 충격이 돌고 돌아 국내 증시로 다시 전해졌다. 국제 유가는 하루 만에 30% 폭락하고, 국내 국고채 금리는 사상 처음으로 장중 0%대를 찍었다. 증시 전문가들은 “증시의 하락폭이 과도한 수준”이라면서도 “각종 불확실성이 쏟아져 섣불리 반등을 점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3重 악재 덮친 코스피…"V자 반등 어렵다"
갈수록 커지는 코로나19 충격

이날 코스피지수는 85.45포인트(4.19%) 내린 1954.77로 마감했다. 2018년 10월 11일(-4.44%) 후 하락률이 가장 컸다. 그때도 미국 경제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흔들리면서 글로벌 증시의 동반 급락을 불러왔다.

장 시작 전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먼저 거래를 시작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합의 불발에 30% 넘게 폭락했기 때문이다. 미국 S&P500지수 선물도 아침부터 4% 넘게 하락했다. 이어 문을 연 아시아 증시가 폭락 수준을 보이면서 ‘검은 월요일’이 현실이 됐다. 3% 하락으로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점점 더 낙폭을 키웠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하루 57조원 감소했다.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1조3125억원으로 1999년 1월 3일 한국거래소 집계 이후 역대 최대였다. 한 펀드 매니저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낙폭이 생각보다 컸다”며 “시장이 공포에 움직이고 있어 저가 매수보다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증시 충격은 파도가 밀려오듯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다. 국내 증시가 처음 코로나19에 영향을 받았던 1월 말과 2월 초만 해도 코스피지수 저점은 2118.88로 높았다. 중국 내 확산에 그칠 것이란 낙관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내 확진자가 급증하자 코스피지수는 지난달 28일 1987.01까지 하락했다.

이후 반등하던 지수는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로 코로나19가 퍼지면서 다시 한 번 급락했다. 이날 지수는 미·중 무역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29일(1933.41) 후 최저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에서도 감염자가 늘면서 투자자들이 미국 경기 침체까지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코스피 1900선을 바닥으로 보지만 경기 침체 위험이 커지면 1800선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유가 급락은 투자자의 셈법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가 급락이 미국 하이일드 채권 스프레드 확대로 이어지며 글로벌 투자 심리를 악화시켰다”며 “유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시장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가 급락은 셰일오일 등 에너지 업체들의 부실과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게 약한 고리가 돼 전체 회사채(크레디트) 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내 증시에선 조선과 건설주가 급락했다. 유가 급락에 선박과 플랜트 수주가 줄어들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12.13% 내린 5360원에 마감했다. 2005년 주가 수준이다. 한국조선해양(-9.01%) 삼성엔지니어링(-8.60%) 대우조선해양(-7.21%) 현대건설(-6.80%) 대우건설(-6.43%) 등도 낙폭이 컸다.

현재 코스피지수 주가순자산비율(PBR: 시가총액/순자산)은 0.8배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선 대체로 1900선을 지지선으로 보고 있다. 다만 상황이 어디까지 나빠질지 불확실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전경대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미국 장이 안 좋은데 한국 시장만 좋긴 어렵다”며 “당장 바닥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PBR 0.8배가 바닥이라고 해도 실적 전망치가 하향되면 1900선이란 기준이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아시아 주요 반도체 및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영업이익 전망치가 110억달러(7%) 삭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성한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알파운용센터장은 “지금은 펀더멘털보다 공포 심리가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며 “확진자 둔화나 국제 공조 등 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는 계기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임근호/한경제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