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들은 의결권 자문사 따르는데
업체 주총 안건 분석인력 극소수

사외이사·대표이사 선임 등
주총 시즌 때 막강한 영향력
'벼락치기 보고서'에 기업 운명 달려
직원 9명이 800곳 안건 분석 '뚝딱'…벼락치기 보고서, 기업 生死 좌우

경영권 분쟁이 붙은 한진그룹의 조원태 회장 측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강성부펀드)·반도건설 등 ‘3자연합’ 측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의결권 자문사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달 초 의결권 자문사들이 조 회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연임안 등에 대한 의안 분석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양측의 지분율이 엇비슷한 상황이어서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들의 표심에 영향을 주는 자문사의 찬반 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양측이 의결권 자문사와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전했다.

거세지는 의결권 자문사의 입김

의결권 자문사는 기관투자가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주총 안건을 분석해준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공제회 자산운용사 등 기관들이 수백 곳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상장사별 주총 안건을 자체적으로 분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기관들은 스튜어드십코드(의결권 행사 지침) 활동을 외부에 공개해야 하는데 주주권 행사의 적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를 상당 부분 따를 수밖에 없다”며 “스튜어드십코드가 국내에 정착해 나갈수록 의결권 자문사의 힘은 커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 KT&G의 사장 연임안, 맥쿼리 인프라의 운용사 교체안 등 기업들의 첨예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결권 자문사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의결권 자문사들이 주총 안건을 쥐락펴락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상장사들은 초조해하고 있다. 이들의 보고서 하나에 경영권이 휘청거릴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올해 주총 시즌에는 상장사 사외이사의 임기를 최대 6년(계열사 합산 9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718명에 달하는 사외이사 물갈이가 예고돼 있다. 의결권 자문사들이 사외이사 선임 반대를 권고하기라도 한다면 상장사로선 경영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름값 못하는 ‘깜깜이’ 부실 자문

의결권 자문사의 입김이 막강해지는데도 정작 이들의 의사 결정 방식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중점적으로 보는 분석 기준을 일부 공개하고 있지만 확보한 데이터 출처와 평가 방법론 등은 알 수가 없다. 의안 분석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누구도 알기 어려운 ‘깜깜이’ 구조다.

의안 분석을 담당하는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전체 상근 인력이 40여 명 수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주총 의안 분석을 담당하는 인력은 9명에 불과하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800여 개 국내 상장사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의 국내 의결권 자문사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도 의안 분석본부 소속 6~7명이 전부다. 주총 시즌엔 10여 명의 인턴을 채용해 의안 분석 보조 업무를 시킨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ISS의 한국 시장 전담 인력은 2명뿐이다. 매년 주총 시즌에 20~30명의 인턴을 채용해 ‘반짝 분석’을 한 뒤 세계 2000여 개 기관에 뿌리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인턴들이 국내 상장사를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며 “짜깁기 수준의 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총 2주 전에 상장사들의 안건이 공개되면 48시간 내 기관에 보고서를 전달해야 해 밤샘 작업도 일쑤다. 주총 시즌엔 1인당 수십 개의 상장사 주총 안건을 분석해야 한다.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기관마다 투자 지침이 달라 맞춤식 보고서를 줘야 하지만 기계적으로 분석해 동일한 내용을 뿌리는 일도 다반사”라며 “자문을 의뢰하는 기관의 입맛에 맞는 의견을 줘야 할 때도 많다”고 했다.

때로는 상장사의 로비 대상이 될 소지도 있다. 안유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아직 태동기인 국내 의결권 자문 시장의 성장을 위해 자문 내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황정환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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