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열린 문화로 새롭게 태어나겠습니다.”금감원은 지난 21일 탈권위주의, 소통, 역지사지를 3대 기조로 한 ‘열린 문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금감원 직원의 전문성, 도덕성,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확 바꾸겠다는 약속이다. 세부 방안에는 좋은 얘기가 참 많다. 단기 순환인사 대신 직군별 전문성을 높이고, 청렴성에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직원에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고 했다. 불필요한 감독업무는 줄이거나 협회로 넘기고, ‘쓴소리 토크’를 열어 외부의견을 가감 없이 듣기로 했다. 넥타이를 안 매고, 호칭을 수평적으로 바꾼다는 내용도 있다.금융권의 저승사자로 통하는 금감원이 권위를 내려놓고 소통하겠다는데, 정작 금융회사들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예전에도 그랬잖아요, 아시면서….”‘새로 태어나겠다’는 금감원의 쇄신안은 지난 10년 동안 네 번 나왔다.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2011년, 권혁세 당시 원장은 ‘금감원 쇄신방안’을 발표했다. 카드사 정보 유출과 동양 기업어음(CP) 사태의 후폭풍이 거셌던 2015년엔 진웅섭 원장이 ‘금융감독 쇄신 및 운영 방향’을 내놨다. 채용비리 사건이 터진 2017년, 최흥식 원장은 외부인사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금감원 쇄신안’을 또 발표했다.이때마다 전문성 제고, 외부와의 소통 강화, 재량권 남용 방지, 비리직원 중징계, 내부통제 강화 등이 단골로 등장했다. “뼈를 깎는 자세로 쇄신”(권혁세), “초심으로 돌아가겠다”(최흥식)는 다짐도 비슷했다.금감원의 변화 의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약속을 스스로 뒤집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건 문제다. 2015년 쇄신안의 핵심은 금융회사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 상징적 조치가 종합검사 폐지였는데, 금감원장이 바뀌자 4년 만에 부활했다. 지난해 종합검사를 받아본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과거처럼 온갖 서류를 싹싹 쓸어가더라”고 불평했다.2011년 쇄신안에는 “죄질이 나쁜 비리직원은 기본적으로 면직 등 중징계를 내리겠다”는 대목이 있다. 2017년에는 금감원 직원의 부당 주식거래를 막기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수준의 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금감원 노조의 반발로 없던 일이 됐다. 2015~2018년 주식거래 규정 위반으로 적발된 금감원 직원은 92명. 이 중 71%(65명)가 징계위원회 소집 없이 경고로 끝났다. 금감원장이 언론과 월 1회 이상 만나 현안을 자세히 설명하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2020년 쇄신안은 “검사·제재 절차를 당사자 입장에서 균형감 있고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법적 소멸시효(10년)가 지난 키코 사건을 분쟁조정위원회로 끄집어내 은행에 배상 결정을 내린 게 불과 두 달 전이다.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라임 사태, 우리은행 비밀번호 도용사건 등의 감독부실 문제로 난타를 당했다. 바로 다음날 예정에도 없던 ‘열린 문화 프로젝트’ 보도자료가 뿌려졌다. 금감원 쇄신안은 ‘2020년 버전’이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 문제점과 개선방향은 이미 잘 정리돼있다. 이행만 하면 된다.tardis@hankyung.com
1조원대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과 관련해 대신증권의 '라임 펀드 환매 취소' 논란은 라임의 소극적인 해명이 빚은 해프닝으로 알려졌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신증권은 지난해 10월 라임 모(母)펀드 환매 중단에 대한 조치로 라임펀드를 구입한 자사 고객들을 상대로 환매 신청을 받았다. 그렇지만 해당 펀드의 환매 중단은 이미 결정된 상황이었다는 것. 대신증권의 환매 신청은 사실상 환매 재개시 우선 순위를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환매 번호표'였던 셈이다.대신증권은 동시에 라임에 환매 신청 가능일을 '매일'로 바꾸는 약관 변경을 요청했다. 해당 펀드는 '매달 20일' 환매 가능한 상품이지만 약관이 변경되면 향후 환매가 재개 됐을 경우 언제든 환매할 수 있다. 대신증권은 라임이 당시 환매 중단의 원인이 자산의 문제가 아닌 유동성의 문제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환매 재개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런데 라임 사태가 확산되면서 대신증권의 '환매 요청'은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더욱이 대신증권이 환매 약관 변경을 오전에 신청했다가 저녁 늦게 라임이 취소 통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신증권이 라임과 함께 거짓말을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일부 고객들은 대신증권이 고객 동의 없이 환매 요청을 취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대신증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라임이 고객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받아 일괄적으로 환매를 취소한 것"이라고 했다. 윤진우/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끝까지 자기들 책임은 없다는 거네요."20일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를 보던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TV를 껐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라임 사태에 대한 의원들의 질책에도 금융당국은 여전히 '책임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의 "(금감원은 감독당국으로)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발언이 특히 그랬다.금융당국 수장들이 사과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윤 원장은 이날 "감독·검사를 책임지는 금감원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역시 "사모펀드 자율을 높인다는 취지로 관리·감독을 공모펀드보다 촘촘히 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이들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자율규제 시스템을 적용한 만큼 모든 책임은 금융사에 있다'에 가까웠다. 금융사가 내부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완화된 규제를 악용했을 뿐 금융당국은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송구스럽다는 사과는 결국 '부작용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것'에만 해당했다.금감원이 DLF 사태를 막을 기회가 있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18년 10월 미스터리쇼핑(암행 감사)에서 DLF 판매의 문제점을 확인했지만 형식적인 개선 통보만 내릴뿐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그러다가 문제가 불거지니 '내부 통제 부실'을 이유로 최고 경영자에게 금융권 재취업이 3년간 제한되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후에는 내부 문책은커녕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며 임원(부원장보) 자리만 늘렸다.금융위도 비슷하다. 라임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사 결과 발표를 늦췄다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금융위는 지난해 7월 라임 사태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고 8월 금감원 검사가 진행됐지만 정작 공식 발표는 7개월이 지난 이달 중순에 내놨다. 은 위원장이 직접 "일부러 시간을 끌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책임론은 계속된다. 2015년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주도한 금융위가 정책 실패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발표를 늦췄다는 주장이다.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금융사는 물론이고 감독당국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와 같이 감독 부실에 대한 반성 없이 사과만 해서는 비슷한 사태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금융소비자원은 "DLF 사태의 1차 책임은 금감원 등 금융당국에 있다"고 지적했다. DLF·라임 사태는 금융사의 과도한 욕심에 금융당국의 총체적인 문제가 더해진 결과물이다. 금융당국 수장이 책임론을 반박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게 부적절한 이유다. 그래야 금융당국의 제재에 신뢰가 느껴질 것이다.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