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산업에 대한 정당한 가치 평가인가,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무시한 과도한 상승인가.’

2차전지 관련주가 날아가고 있다. 관련 종목뿐 아니라 상장지수펀드(ETF)도 예외가 아니다. 연초 증시를 이끌던 반도체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모양새다. 주가가 단기 급등하면서 적정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논란에 휩싸였다. 2차전지주 급등장에서 소외된 개인은 지금 들어가도 될지를 저울질하며 눈치를 보고 있다.

2차전지주 상승을 이끄는 것은 미국 테슬라를 필두로 한 전기자동차 시장의 급성장이다. 유럽과 북미의 전기차 판매량 급증을 계기로 국내 2차전지주에도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주가가 치솟고 있다. 종목별로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면 투자심리가 악화돼 조정국면에 돌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테슬라 따라 질주하는 2차전지株…'미래 가치' 논란
삼성SDI·에코프로비엠 사상 최고가

1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SDI는 2만1500원(6.69%) 오른 34만3000원에 장을 마쳤다. 1979년 상장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코스닥시장 상장기업 에코프로비엠도 9600원(12.31%) 오른 8만7600원을 기록해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에코프로비엠의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순위는 14위에서 9위로 단숨에 5계단 높아졌다. 이들 종목은 전기차용 2차전지를 개발하거나 여기에 들어가는 소재 및 부품을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2차전지주로 꼽히는 LG화학, 일진머티리얼즈는 이날 각각 41만3500원, 5만3600원에 마감해 지난해 연초 이후 신고가를 기록했다. 올해 연초 대비로는 각각 30.24%, 25.38% 오른 가격이다. LG화학은 정제마진 악화로 지난해 실적이 쇼크 수준이었는데도 2차전지 최고 수혜주로 주목받으며 주가가 뛰고 있다. 2차전지 관련 ETF인 ‘TIGER 2차전지테마’ ETF는 연초 이후 21.24%, ‘KODEX 2차전지산업’ ETF는 같은 기간 19.19% 상승했다.

이들 종목의 주가 급등은 외국인이 주도하고 있다. 외국인은 새해 들어 이날까지 LG화학을 3537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개인이 4309억원어치 순매도한 것과 대조적이다. 외국인은 삼성SDI와 일진머티리얼즈도 각각 2520억원어치, 523억원어치씩 쓸어담았다. 코스닥시장 종목인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10일까지 순매도(33억원)였으나 11일에는 순매수(62억원)로 돌아섰다.

급격한 주가 상승으로 인한 밸류에이션 고평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기차가 미래산업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당장 올해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가파른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이런 우려가 나오는 주된 원인이다.

PER 급등…고평가 여부 의견 엇갈려

실제로 이들 종목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주가/향후 12개월 주당 순이익)은 최근 크게 높아졌다. LG화학의 12개월 선행 PER(지난 10일 기준)은 32.71배로 화학업종 평균(12.62배)보다 월등히 높다. 삼성SDI(25.43배), 일진머티리얼즈(31.25배), 에코프로비엠(27.89배)도 12개월 선행 PER이 수십 배에 이른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지만 아직 수십만 대에 불과하고 앞으로의 전망도 장담할 수 없다”며 “최근 주가는 이상 과열”이라고 했다.

실적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한 2차전지 기업은 전기차 회사의 신차 출시 지연 등으로 최근 증설한 공장의 연간 가동률이 10%가 안될 가능성이 있다”며 “실적이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치면 주가가 크게 조정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단기 주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상당수 증권사는 올초부터 2차전지 업체의 목표주가를 잇따라 높이고 있다. 고문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베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은 PER이 50배가 넘는다”며 “국내 업체는 오히려 저평가돼 있다”고 설명했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테슬라가 2022년에 전기차 100만 대를 파는 게 목표인데 이게 실현되면 더 급격한 주가 움직임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