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의 포문을 열었다. 삼성전자 등 56개 회사에 대해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면서다. 이 명단에는 참여연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이 올해 주총의 주요 타깃으로 삼은 삼성물산대림산업 등도 포함됐다. 국민의 노후자금 70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주총장의 권력기관’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2월 8일자 A1, 14면 참조
삼성물산·대림산업…국민연금이 그대로 '정조준'
‘적극적 주주권’ 포문 연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지난 7일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주)LG·네이버 등 국내 상장사 56곳에 대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는 내용을 공시했다. 이들 기업에 배당 확대를 요구하거나 위법 행위를 한 이사의 해임을 청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 ‘국민연금 경영참여 가이드라인(지침)’을 통과시키면서 올 3월 정기 주총부터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데 따른 것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 313곳(작년 말 기준) 중 17%에 해당하는 수다.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국내 대기업 계열사와 포스코 대한항공 셀트리온 카카오 등 국내 업종별 대표 기업들이 망라됐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민주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가 정조준한 삼성물산 대림산업 등도 이번 명단에 올랐다. 이달 5일 열린 올해 첫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참여연대 소속 기금위 위원은 삼성물산 대림산업 효성 등 3개 기업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했다. 조현준 효성 회장,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을 겨냥해 국민연금이 이사직을 박탈하라는 주문이었다. 삼성물산에는 제일모직과의 합병 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독립적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라고 했다. “정부는 물론 노동계와 시민단체도 국민연금에 영향력을 행사해 민간기업의 정관 변경, 이사 선임·해임 등 경영개입을 본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재계 관계자)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물산·대림산업…국민연금이 그대로 '정조준'
5% 미만 지분 보유 기업에도 영향력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은 이들 56개사뿐이 아니다. 5% 미만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기업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

경영권 분쟁이 가열되고 있는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이 대표적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진영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강성부펀드)·반도건설로 구성된 반(反)조원태 진영의 지분율은 각각 32.06%와 31.98%로 비슷한 수준이다.

국민연금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한진그룹 회장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작년 말 기준 2%대로, 종전에 알려진 4.11%보다는 줄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다른 국내외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보유 지분율보다 훨씬 크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황정환/이상은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