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신종 코로나에도 美 경기지표가 개선된 이유
미국의 1월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좋게 나오고 있습니다. 뉴욕 증시가 이번 주 지속적으로 반등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런 경기 개선에 대한 희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가운데, 미국은 왜 이런 경기 개선 기대에 들떠 있을까요?

5일(현지시간) 발표된 ADP 1월 민간고용은 29만1000명이나 증가했습니다. 2015년 5월 이후 월간 최대 증가 폭입니다. 시장 예상 15만명을 크게 상회했습니다.
지난 3일 발표된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전월 47.8에서 50.9로 큰 폭으로 올라 다시 확장세로 전환했습니다. 작년 8월 위축 국면으로 떨어진 뒤 6개월만에 다시 확장세로 돌아선 것입니다.
12월 공장재 수주 실적도 전월보다 1.8% 증가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것도 2018년 8월 이후 최대 증가 폭입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신종 코로나에도 美 경기지표가 개선된 이유
월가 관계자는 "미중 1단계 무역합의로 인한 기대감이 경제 지표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류허 중국 부총리는 지난달 15일 백악관에서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했습니다. 핵심은 중국이 2020년 1월1일~2021년 12월31일 사이에 미국산 상품을 (2017년 수입액에 더해) 추가로 2000억달러 어치를 더 사는 것입니다.
총 96쪽으로 구성된 합의문 중 총 26페이지(55~80쪽)에 중국이 사야할 미국산 상품의 액수와 구체적인 HS코드(수출입에 쓰는 관세코드)가 나열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중국의 수입액을 기준으로 2018~2019년 무역전쟁 기간 중국이 구매하지 않은 양을 더해 향후 2년간 추가 구매액을 정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내년까지 미국산 공산품 800억달러, 에너지 500억달러, 서비스 350억달러, 농산물 320억달러 등을 더 사야합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신종 코로나에도 美 경기지표가 개선된 이유


지난 15일 공개된 이 목록을 본 미국 기업들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당연히 생산을 확대할 준비를 해야할 겁니다. 향후 2년간 확실한 '중국 특수'가 약속됐으니까요.
기계 등 공장재를 사고, 고용을 늘리고, 부품 소재 등의 구매도 확대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활동이 1월 제조업 PMI와 공장재 수주, 고용지표에 나타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신종 코로나에도 美 경기지표가 개선된 이유
문제는 갑작스런 신종 코로나 창궐로 오는 14일 발효될 이 약속을 중국이 지킬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블룸버그는 지난 3일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관리들은 코로나 사태를 감안해 미국이 1단계 무역합의 이행 약속에 대해 유연성을 보여주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경제 활동이 중단된 마당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미국의 자세는 단호합니다. 블룸버그 보도 직후 미 무역대표부(USTR) 대변인은 중국의 구매 약속 변경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보도 이전인 지난달 29일에는 대중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국장은 신종 코로나가 중국 경제에 타격을 입혀도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유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제경제위원장은 지난 4일 "중국에서의 코로나 확산이 1단계 합의에 따른 미국 상품과 서비스 구매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출붐은 조금 더 지연될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영향은 있을 수 밖에 없겠지만, 틀을 크게 바꾸겠다는 어조는 어니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중국이 구매액 변경을 공식적으로 요구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철회했던 관세 인상 카드를 꺼내는 등 다시 무역전쟁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 전에 뚜렷한 경제 성과를 보여줘야 하므로 중국에 관대해지기 어렵다는 겁니다.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FP)는 “합의문에는 자연재해 조항이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해심이 있거나 너그러운 성향을 보일지는 불투명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욕 증시 투자자들은 아직까지는 수입 약속 이행→경기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이 지속된다면 중국의 수입 차질이 발생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표 계산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머리 속도 복잡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신종 코로나에도 美 경기지표가 개선된 이유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