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해 들어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대량보유 공시의무(일명 5%룰)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5%룰’을 완화하면 연기금의 기업 경영 개입이 더 심해질 것이란 시장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원칙) 정착을 주문한 마당에 개정안 처리를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1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열린 차관회의에서 5%룰 완화를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오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다음달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개정안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이 상장회사를 상대로 정관변경, 배당 확대, 임원 보수 삭감 등을 요구하는 행위를 경영권 영향 목적이 없는 일반투자 활동으로 분류한다. 일반투자 목적으로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하거나 5% 이상 주주 지분이 1% 이상 변동될 경우 보유 현황 등만 월별로 약식 보고하도록 했다.

현재는 경영권 영향 목적으로 지분 변동 시 그 사실을 5일 이내에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연기금이 제 목소리를 낼 때마다 지분 변동사항이 공시되면 투자전략이 그대로 노출된다”며 “‘경영권 영향 목적’ 범위를 줄이고 공시 의무를 간소화해 연기금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금융위가 처음 이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은 작년 9월이다.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상장회사협의회 등 재계에서 “연기금의 기업 경영에 대한 간섭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국회를 건너뛰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하는 꼼수를 부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부정적 여론에 부담을 느낀 금융위는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뒤에도 처리를 미루며 수정 여부 등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공정경제’를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시행령 등의 제·개정을 통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히자 5%룰 완화 방침에 다시 힘이 실렸다. 결국 금융위는 별다른 수정 없이 당초 원안대로 시행령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였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