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작년 말에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기업 보유 지분을 대거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상장사들은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의 ‘타깃’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에 이어 지난해 말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한 가이드라인까지 의결했다. 주총 시즌에 회사 측 주요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증권업계의 시각이다.
(주)한진·대한항공·(주)효성·대림산업…3월 주주총회 때 국민연금 타깃 되나
국민연금 공격 가능성에 떠는 재계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보통주 기준)을 보유한 종목은 총 313개(작년 4분기 말 기준)로 집계됐다. 이 중 작년 3분기와 비교해 지분을 늘린 종목은 105개였다.

유가증권시장 시총 상위 주요 종목들이 대거 국민연금의 ‘투자 바구니’에 담겼다. 삼성전자(10.49%→10.62%)를 비롯해 SK하이닉스(9.10%→10.24%) 네이버(11.09%→11.52%) 현대자동차(10.37%→10.45%), 셀트리온(7.10%→8.11%) 포스코(11.71%→11.80%) 등 주요 대형주의 지분율이 늘었다.

증권가에선 국민연금의 대형주 투자 확대가 단순히 투자수익 제고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에 적극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의결하면서 우려는 더 커졌다. 지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횡령·배임 등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 이사 해임, 정관 변경 등 관련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임원 재선임안 등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따라 삼성 및 효성그룹 상장 계열사와 대림산업 등 관련 이슈가 남아있는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고등법원에서 국정농단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횡령·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도 사익 편취 혐의로 검찰이 기소했다. 국민연금은 효성과 대림산업의 지분을 각각 10.00%, 12.79%까지 늘렸다.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한진그룹도 압박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그룹 계열사인 (주)한진과 대한항공의 국민연금 지분은 각각 9.62%, 11.36%까지 늘어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한진그룹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현재 지분율이 5% 아래인 그룹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확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소·부·장주 투자 빛 볼까

국민연금은 반도체 부품과 장비 업종도 작년 말 대거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오테크닉스(레이저 어닐링 장비), 테스(반도체 증착 장비), 하나머티리얼즈(식각공정 소재), 피에스케이(애셔장비) 등 종목의 지분율을 모두 5~6%대로 처음 끌어올렸다.

스마트폰 부품 관련주인 와이솔, 아모텍 등 종목도 지분율 5% 이상 종목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올해 5세대(5G) 통신, 자율주행,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업황을 자극할 요소가 많다”며 “전방 산업이 살아나면서 관련 소재 장비 관련 기업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업황 전망이 좋지 않거나 지난해 급등한 일부 종목은 지분을 줄였다. 아프리카TV의 지분율은 8.68%에서 5.05%까지 줄었다. 글로벌 수요 감소 등으로 부진을 겪고 있는 화학업종(남해화학, 효성첨단소재, 송원산업)도 지분이 각각 1%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