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부동산금융을 겨냥한 고강도 조치를 쏟아내면서 증권사들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부 대형 증권사 투자은행(IB) 부서에서는 벌써부터 투자계획 축소 등 위축 조짐도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부동산시장 안정을 내세워 정상적인 금융 투자에까지 일률적 잣대를 들이댈 경우 자칫 ‘생산적 금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국 “IB, 부동산 대출 그만하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요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IB의 대출과 지급보증 등 신용공여 대상으로 규정된 중소기업 범위에서 특수목적회사(SPC)와 부동산 관련 법인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일반적인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100% 이내에서 투자자 신용공여(주식담보대출 등) 및 일부 기업금융 관련 대출이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자기자본 3조원을 넘겨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로 지정되면 기업대출은 물론 중소기업 및 기업금융 업무에 한해 자기자본의 200%까지 신용공여를 할 수 있다. IB 육성 차원에서 자본력을 갖춘 일부 대형 증권사에 대해서는 은행처럼 기업대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하지만 종투사들이 이처럼 추가로 부여된 신용공여 한도를 실제론 부동산 등 기업금융과 직접 관련 없는 분야에 사용하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명목상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SPC를 거치면 부동산 등 중소기업 외 분야로 IB의 신용공여가 얼마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종투사의 SPC 대출액 약 5조원 중 40%가량이 부동산 분야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했다.
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종투사의 신용공여 자금이 지나치게 부동산으로 쏠리는 현상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증권업계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대부분의 부동산금융이 SPC를 활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자기자본 대비 신용공여 비중이 100%를 넘어가는 구간에서는 부동산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7개 종투사(작년 신규 지정된 하나금융투자 제외)의 자기자본 대비 신용공여액 비중은
(75.7%) 순이었다. 기업 신용공여 중 부동산 비중은 메리츠증권(56.4%), 신한금투(39.3%), 한투증권(38.0%) 순으로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자기자본 대비 신용공여 비중이 100%를 넘는 메리츠는 물론 80~90% 수준인 다른 증권사들도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이라며 “증권사 IB 부문이 커지면서 신용공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금조달·투자위축 불가피
당국의 표적이 된 각 증권사 IB 부서는 연초부터 자금조달·투자계획 수정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한 대형 증권사는 올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의 운용 한도를 작년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은행 예금에 비해 비교적 고금리를 지급하는 발행어음에 대한 시장 수요가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규제 강화로 더 이상 확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신용공여 위험액이나 레버리지 비율 산정 등 부동산금융 규제가 타이트해지면서 자금 운용의 폭이 극도로 좁아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증권업계에서는 IB가 수행하는 다양한 분야의 투자를 ‘부동산 투기’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금융의 효율적 자원배분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증권사 CEO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리조트 등 관광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도 단순히 부동산금융으로 몰아붙여 규제하면 곤란하다”며 “정상적인 부동산금융까지 위축될 경우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식의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부문이 단기간 과도하게 팽창한 점은 인정하되, 규제를 한꺼번에 급작스럽게 하기보다는 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순차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감원과 업계가 진행 중인 부동산 그림자금융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끝나는 대로 당국 차원에서 실태조사를 할 예정”이라며 “이후 업계 의견을 참고해 규정 개정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고 밝힌 가운데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 경제정책 수장도 올해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힘쓰겠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과 경제수장들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는 ‘돈줄’을 옥죄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만큼 부동산 대출 규제망이 한층 촘촘해질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부각된 ‘부동산 빚폭탄’8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부동산금융은 2003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 늘었다.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다. 부동산금융은 금융회사의 주택담보대출 및 부동산 금융보증과 기업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동산 금융투자상품 금액을 합친 개념이다.부동산금융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 기준)은 2016년 말 13.5%, 2017년 말 9.4%, 2018년 말 7.0%로 해마다 낮아졌다. 하지만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금융 비율은 2017년 말 97.6%, 2018년 말 101.3%, 지난해 9월 말 105.1%로 상승했다. 부동산 빚이 경제 규모보다 더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문 대통령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를 전날 신년사에서 여실히 드러냈다. 경제수장들도 비슷한 인식을 보였다. 이 총재는 2020년 신년사에서 “저금리 여건이 부동산이나 위험자산에 대한 자금 쏠림으로 이어져 금융 불균형을 심화시킬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 위원장도 신년사에서 “자금이 실물경제보다 부동산으로 흘러가면서 경제의 비효율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전날 금융투자업계 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는 “투자은행 자금의 부동산 시장 쏠림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김 정책실장은 8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은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있다”며 “필요하면 모든 정책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센 정책도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필요하면 한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커지는 동결 가능성금융시장 전문가들은 한은이 올해 기준금리를 한두 차례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자물가 증가율이 0%대를 이어가는 데다 경제성장률도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통위원 4명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4월 20일 이전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 내릴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하지만 문 대통령 발언에 이어 김 실장도 부동산 시장에 대한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자 동결론이 재차 힘을 받고 있다. 김상훈 KB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서울 부동산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주요국 중 상위권에 진입했다”며 “금융안정 목소리가 커지면서 올해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변수가 부각되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에 더 무게를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이라는 전문가도 늘고 있다. 김진명 한화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불거진 대외 불확실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부동산 돈줄을 조이겠다는 정부 정책 기조와는 다르게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나설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부동산 시장에 강력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라며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데 이어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가능한 조치나 정책을 꺼내겠다고 밝혔다. 김상조 실장은 8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어느 하나의 정책만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없다"며 "12·16대책이 그 한 부분이었고, 필요하면 앞으로도 메뉴판 위에 올라와 있는 모든 정책수단들을 풀가동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더 센 정책이 나올 수도 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김 실장은 "필요하면 합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은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있다"며 "필요하면 모든 정책 수단을 다 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정부가 물러서지 않을 거라고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겠다"며 "핀셋으로 필요한 부분에 관해서 전격적으로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감을 안정시켜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말도 덧붙였다.고가 주택이 부동산 시장 전체를 흔들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연립 등 공동주택이 1340만호 정도가 되는데, 작년 기준으로 이중 15억원 이상은 1.2%이고 9억원 이상은 3% 정도다"라며 "4%에 불과한 9억원 이상의 고가주택들이 1340만호 전체 시장을 좌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예로 들면서 필요하면 모든 걸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주로 대출 규제는 집을 사시는 분들에 대한 대출을 문제 삼았는데, 어제 금융위원장께서 그런 건설업계에 자금을 공급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고 전했다.은 위원장은 '금융투자업계 CEO 간담회' 자리에서 "중소기업에 공급되어야 할 자금이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부동산 개발사업 등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와 함께, 투자은행(IB)의 신용공여대상으로 규정된 중소기업의 범위에서 SPC와 부동산 관련 법인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최근 발표된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규제와 관련해서도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할 계획이며 사회간접자본(SOC) 등과 같이 생산적인 분야에 대한 자금공급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한편 정부는 8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2020년 재정 조기집행계획'을 확정했다. 올해 상반기 중앙재정 집행률 목표를 역대 최고 수준인 62.0%로 정했다. 정부는 SOC 사업들에 대해 내달까지 사전절차를 마치고 1분기에 철도(6조4000억원)와 도로 (6조6000억원) 등 연간 예산(46조7000억원)의 30% 수준을 조기할 방침이다.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새해 부동산시장의 키워드는 ‘불확실성 확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추가 금리 인하 △거시경제 악화 △4월 총선 △부동산 규제 등을 2020년 부동산시장의 향방을 좌우할 4대 지표로 꼽았다. 여기에 정부의 대입 정시전형 확대 및 자율형 사립고·외국어고 폐지 정책과 전·월세 상한제 등이 도입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전·월세 시장의 변동폭도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올해 집값 ‘상저하고’ 예상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 서울 부동산시장의 트렌드를 ‘상저하고’로 내다봤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로 상반기 약보합 장을 이어가다 하반기에 집값이 상승한다는 뜻이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서울 핵심 지역은 올 상반기에 보합세를 띠고 외곽과 수도권 접경지역에서는 집값이 오를 여지가 있다”며 “한국은행의 저금리 기조와 4월 총선, 토지보상금 문제 등이 하반기 집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민간기관인 주택산업연구원도 같은 전망을 했다. 주택산업연은 새해 서울 집값이 1.0%(아파트 1.2%)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 진입을 희망하는 대기 수요와 누적된 공급 부족 심리, 학군 수요 집중 등을 잠재적 상승 압력 요인으로 지목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값과 관련해 “12·16 대책 등 정부 규제를 제외하고는 다른 변수가 없어 하반기에는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주택산업연은 특히 “분양가 상한제 유예와 다주택자 한시적 양도세 중과 배제가 종료되는 2분기가 새해 주택시장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는 상황에서 12·16 대책으로 시가 15억원 초과 주택의 대출이 원천 차단된 만큼 향후 ‘비대출 기반 수요자’의 움직임도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전문가들은 최근 심화되고 있는 초양극화에 따라 서울과 지방 아파트값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지방은 거시경제가 워낙 나쁘고 일자리가 부족해 침체 분위기로 갈 것”으로 내다봤다.서울에서도 지역에 따라 양극화가 나타날 것으로 진단했다. 이미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 대입 정시 확대 등 교육제도 개편 영향에 대치동과 목동 등 학군 인기지역으로 집값 상승 불길이 번지는 추세다. 박형렬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서울 신축 아파트와 재건축·재개발 확정 아파트는 상승하고 시세 9억~15억원 아파트는 하락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로또 분양’ 청약 가점 대폭 오를 것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이 대폭 확대된 만큼 ‘로또 청약’ 열기는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건설업체들은 올해 전국적으로 약 33만 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한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7만 가구가 수도권에 공급될 예정이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상한제 시행 전에 개포주공1단지, 둔촌주공아파트 등 2만5684가구가 분양을 앞두고 있다.12·16 부동산 대책에 따라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에 대거 포함된 강북의 재개발 사업장들도 분양에 나선다. 성북구 장위4구역(2840가구), 은평구 수색6구역(1223가구), 수색7구역(672가구), 증산2구역(1386가구) 등이다. 사업 일정을 고려하면 대부분 내년 4월 이후 공급될 예정이다.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작년 수색9구역 DMC SK뷰 전용 84㎡ 분양가가 7억~7억2000만원이었는데 상한제 대상에 포함되면 이 가격이 6억원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시세보다 3억~4억원 이상 저렴한 가격에 나와 청약 가점이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상가·오피스 상업용 부동산 ‘경고등’자산가들의 주요 투자처로 꼽히는 상업용 부동산시장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상가와 사무실 공급이 크게 늘어난 반면, 온라인 쇼핑 확대 등으로 임차 수요는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2019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상가 공실률은 2018년 이후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지난해(1~3분기 평균) 11.4%를 기록했다. 사무실 공실률 역시 여전히 높은 수준(12.1%)이다. 작년 9월 말 기준 상가 공실률은 11.5%, 오피스 공실률은 11.8%였다. 지방은 수도권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사무실 공실률은 13.3%에 달했다. 한은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연체율이 낮고 저금리로 이자 부담이 크지 않아 위험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작지만, 경기 악화에 따라 연체와 부실이 빠르게 늘어날 잠재 리스크가 있다”고 내다봤다.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