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태에도 외국인 한국증시 순매수 행진…'반도체 사랑'
증권팀 = 미국과 이란의 군사 대결 격화로 글로벌 투자심리가 나빠지는 가운데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례적으로 한국 주식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집중 매수하는 등 반도체 경기 회복에 '베팅'하는 것으로 보인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2천617억원(잠정치)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로써 외국인은 미국이 이란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을 공습, 사살한 지난 3일부터 4거래일 연속 순매수 행진을 이어갔다.

이 기간 외국인이 사들인 코스피 주식은 약 8천190억원어치에 이른다.

이날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가하는 등 위기가 증폭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오전 한때 11원 이상 급등하고 코스피도 2,151.31로 1.11% 하락 마감하는 등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위축됐지만, 외국인의 한국 주식 쇼핑을 막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삼성전자가 시장 전망치를 넘어선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것이 이날 외국인 순매수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이날 오전 공시한 작년 4분기 영업이익(잠정치)은 7조1천억원으로 증권사 전망치 평균(6조5천억원대)을 웃돌아 올해 반도체 업황 회복과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키웠다.

이에 따라 이날도 외국인 순매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됐다.

이날 외국인의 순매수 종목 1~3위는 삼성전자 보통주(2천234억원), SK하이닉스(385억원), 삼성전자우(275억원)로 잠정 집계됐다.

그 결과 코스피가 1% 이상 떨어진 와중에서도 삼성전자는 장중 한때 5만7천400원까지 오르면서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가 1.79% 상승 마감했다.

SK하이닉스도 3.62% 급등한 9만7천400원에 거래를 마치며 2012년 3월 공식 출범 이후 최고가 기록(9만6천원, 작년 12월 27일)을 약 2주 만에 경신했다.

외국인은 앞서 지난 3~7일 3거래일간에도 삼성전자 주식을 1천9억원어치 사들였다.

이원 부국증권 연구원은 "지난 주말께부터 미국-이란 문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장이 하방 압력을 받았는데도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반도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강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원/달러 환율이 장 초반 달러당 1,178원대까지 급등했다가 오전 11시 30분께부터 시가총액 상위주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외국인 매수가 몰리면서 환율 상승세가 꺾여 1,170원대로 상승분을 반납하는 동력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또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전면전 등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파국적인 수준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수를 뒷받침한다고 진단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매수세가 계속되는 배경에는 미국-이란 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심리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며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환율이 크게 흔들리는 수준으로 사태가 악화하면 모르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실제 투자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 연구원도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들도 유가가 추가로 급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이번 사태가 유가나 환율로 파급될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은 것 같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겠다고 트윗으로 밝히면서 투자심리도 일단 좀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