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돈으로 상장회사를 인수한 뒤 회삿돈을 빼돌리거나 주가를 조작하는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이 대거 적발됐다. 이들은 무일푼으로 경영권을 사들인 뒤 사모 전환사채(CB)로 거액을 조달하고 비상장사 주식을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무자본 M&A로 추정되는 67개사의 공시 위반, 회계분식 및 불공정거래 혐의 등을 집중 조사한 결과 24개사에서 위법 행위를 적발했다고 18일 발표했다. 행위 유형별로는 회계분식 14건, 공시 위반 11건, 부정거래 5건 등이다. 금감원은 20여 명을 수사기관에 고발·통보했다. 이들 세력이 챙긴 부당이득 규모는 1300억원 안팎에 이른다.

기업 사냥꾼의 위법 행위는 상장사 인수 단계에서부터 자금조달·사용, 차익실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인수 단계에서는 경영 참여 목적으로 지분을 5% 넘게 취득하고도 대량 보유 공시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해당 최대주주는 외부감사 비대상 법인이나 투자조합 등 정보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82%)이었다.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주식담보대출을 받고 그 사실을 누락하거나 허위 기재한 경우도 있었다.

자금조달·사용 단계에서는 사모 CB나 유상증자 등을 통해 거액의 자금을 조달한 사례가 빈번했다. 이렇게 24개사가 조달한 자금은 지난 3년간 1조7417억원에 달한다. 이 중 1조2910억원(74%)이 비상장사 주식 취득이나 관계사 대여 등 비영업용 자산 취득에 쓰였다. 회삿돈을 빼돌리기 위해 회계법인 등 외부평가사를 활용해 비상장사 주식을 실제 가치보다 10배 이상 비싸게 사들인 사례도 확인됐다.

시세차익 실현 단계에서는 호재성 허위정보를 뿌린 뒤 주식을 매각하는 ‘치고 빠지기’식 수법이 동원됐다. 바이오나 대마초 등 신규 사업이나 해외시장에 진출한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뒤 작전세력을 동원해 인위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 24개사의 3년간 평균 주가 변동폭은 약 14배에 달했다. 그중 23개사는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됐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