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계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금융에 대한 정부의 ‘옥죄기’에 몸살을 앓고 있다. 부동산금융 수익비중이 높은 일부 증권사는 벌써부터 이익 전망치와 주가가 하락하는 등 거센 후폭풍에 맞닥뜨렸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이유로 대체투자 확대를 통해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발돋움하려는 증권사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메리츠證 4000원 선 ‘붕괴’
'부동산금융 규제' 직격탄 맞은 증권사들
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메리츠종금증권은 460원(11.07%) 떨어진 3695원에 마감했다. 메리츠증권 주가가 3600원 선으로 주저앉은 것은 지난해 8월 23일(3685원) 이후 1년3개월여 만의 일이다.

키움증권(-3.24%), 한국금융지주(-3.15%), NH투자증권(-1.61%), 대신증권(-1.26%), 미래에셋대우(-0.55%) 등 다른 상당수 증권주도 동반 하락했다. 이날 증권주 부진은 코스피지수가 기관투자가와 외국인의 매수세에 힘입어 21.11포인트(1.02%) 상승한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업계에서는 전날 정부가 증권사의 부동산PF 채무보증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묶는 등 부동산금융 억제 대책을 내놓은 것이 증권주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했다고 보고 있다. 메리츠증권 등 일부 증권사는 지난 수년간 부동산금융 사업을 대폭 늘리면서 채무보증액이 자기자본의 100%를 훌쩍 넘어섰다. 가이드라인에 맞추려면 부동산PF를 대폭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게 불가피해졌다.

다른 대형증권사들도 비상이 걸리긴 마찬가지다. 정부가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에 대해 사실상 신규 부동산PF 대출을 금지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종투사는 자기자본의 100%로 신용공여 한도가 묶인 일반 증권사와 달리 자기자본의 20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정부는 앞으로 종투사가 신용공여 한도 증가분을 부동산 대출에 활용할 수 없도록 할 방침이다. 순자본비율(NCR) 등 건전성지표 산출 시 적용되는 신용위험액 특례대상에서도 부동산 대출액은 제외된다.

부동산금융 확대에 제동 걸리나

증권사들이 정부의 부동산금융 규제 강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최근 1~2년 사이 부동산금융이 IB부문의 주된 수익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부동산PF 등의 채무보증을 통해 거둬들인 수수료 수익이 2113억원에 달했다. 하나금융투자(1634억원), 미래에셋대우(1028억원) 등도 채무보증에서 적잖은 수익을 챙겼다.

증권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부동산금융 수익의존도가 높은 메리츠증권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업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부동산PF 사업을 늘려온 회사로 꼽힌다. 지난해 6월 5조4820억원이었던 메리츠증권의 채무보증 잔액은 지난 6월 7조6754억원으로 40.1% 급증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의 현재 부동산 채무보증 규모는 자기자본의 192% 수준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부동산 채무보증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 이하로 맞추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단 1개사(메리츠증권)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은 “가만히 앉아있다가 갑자기 뺨을 맞은 격”이라고 반발했다. 회사 관계자는 “부동산PF 채무보증 건별로 듀레이션(투자금 회수기간)을 월단위로 꼼꼼히 관리해왔다”며 “지금까지 PF 관련 별다른 사고가 터지지 않았는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이런 대책이 나와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한투증권 등 부동산금융 비중이 높은 다른 증권사 역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부동산금융이 IB부문의 주요 성장동력이었던 메리츠증권과 한국금융지주(한투증권 모회사)의 성장 여력 축소가 불가피해졌다”며 메리츠증권과 한국금융지주의 내년 순이익 전망치를 14.2%, 8.5%씩 낮췄다.

오형주/설지연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