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1단계 무역합의가 내년으로 연기될 수 있다는 우려에 한국 증시가 급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11거래일 연속 한국 주식을 팔았다.

21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35% 하락한 2096.60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2100선이 붕괴된 것은 지난달 31일 이후 처음이다. 코스닥지수도 2.14%의 급락세를 보였다. 간밤 미국 증시는 일부 언론들을 통해 미중 1단계 합의가 내년으로 미뤄질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가파르게 하락했다. 다만 백악관에서 협상에 진전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낙폭을 축소해 마감했다.

지난달 고위급 무역협상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차 무역협상의 최종 타결은 약 5주 정도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다음달 초 1차 협상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12월15일에 추가로 부과될 예정이었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연기 또는 철회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최근 미국 증시의 사상 최고가를 이끈 힘이다.

그러나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1단계 합의가 연내 마무리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이 12월 추가 관세 보류와 기존 관세의 철회를 고집하고, 미국은 농산물 수입 확대 외에 지적재산권 보호와 금융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무역합의 기대감의 훼손은 한국 증시 급락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다음주 초까지는 증시 상승을 이끌 동력(모멘텀)이 없다는 우울한 분석도 나온다.

◆ 26일 전후까지 외국인 매도 압력 클 것

이날 한국 증시의 낙폭은 0.5% 미만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과 대만 등 아시아 주변국보다 크다. 오는 26일 종가를 기준으로 예정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지수 정기변경과 관련한 매물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변경에서 중국 주식의 비중이 증가하고, 한국 비중은 감소하게 된다. MSCI 신흥국지수를 추종하는 자금들이 정기변경에 앞서 충격을 줄이기 위한 선제적 조정(한국 주식 매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MSCI 정기변경 관련 매도물량은 2조원 규모로 추정된다"며 "26일 종가를 기준으로 변경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번주 말부터 다음주 초까지 수급 부담이 극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7일 이후 이날까지 외국인의 누적 순매도 규모가 1조90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잔여 매도물량은 1000억원 정도로 보인다.

이번주 하락으로 코스피의 가격 부담이 줄어든 것은 긍정적으로 봤다. 코스피지수 2120선은 12개월 선행 예상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 11배로 부담이 있었던 상황이란 것이다. PER 11배는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 수준이다.

오는 26일 전후로 외국인의 '팔자'가 진정되면 증시는 서서히 안정을 찾을 것으로 봤다.

◆ 방향키를 쥔 미국

이후 한국 증시의 방향키를 쥔 것은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다. 단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 양원을 통과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홍콩 인권법)에 서명할 것인지, 미중이 협상을 재개하고 다음달 예정된 중국산 수입품 관세 부과를 연기할지가 중요하다.

홍콩 인권법의 미 국회 통과에 중국 정부는 "난폭한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앞서서도 홍콩 인권법이 시행되면 보복할 것이라고 수차례 경고해왔다. 홍콩 인권법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을 남겨두고 있다. 트럼프가 미중 무역합의를 위해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박소연 연구원은 "12월15일 중국산 소비재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경기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스몰딜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판단했다.

당분간 PER 10.5배 수준인 코스피 2050선이 지지선 역할을 할 것으로 봤다. 연말 배당을 노린 프로그램 매수세의 유입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